https://www.facebook.com/ironboy71/posts/10202070741240992

페북에서 누가 보라고 알려준 글에 이런게 있었다. 간략하면

“영국은 세계 최초로 자동차를 만든 나라들 중의 하나. 거기다 2차대전 이후에는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자동차 생산국. 그런 나라가 현재 자국 브랜드 단 하나도 남겨놓질 못했음. 말 그대로 전멸당함. 이렇게 깔끔하게 자동차 공업이 전멸당해서 다 팔려나간 나라는 그 예를 찾기도 힘들 것.

도대체 왜??? 영국 애들이 도대체 뭐가 그렇게 못나서? 기술이 없어서? 마케팅을 못해서? 규모의 경제를 못 이뤄서? 제휴를 못해서? 주주 자본주의의 폐해 때문에? 강력한 노조 때문에? 그냥 재수가 없어서? 영국에 비판적 언론이 없어서? - 이런 건 다른 나라에도 다 해당되는 거임. 영국이 특별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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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자동차만 망한건 아니므로 다른 이유도 많이 있지만 구조론으로 보면 철학의 부재다. 철학이 센 독일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본도 나름대로 장인정신 어쩌구 하는 철학이 있다. 독일철학만 철학인건 아니다.

영국은 북해유전 이후 다 망했다. 축구도 망했다. 망한건 결국 의사결정구조가 망한 것이다. 의사결정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은 역시 철학이다. 월드컵에 잉글랜드팀만 나가는 것만 봐도 의사결정구조에 문제가 있다.

철학이란 한 마디로 세상을 1인칭 주체적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이거 훈련해야 한다. 무슨 철학, 무슨 사상, 무슨 주의 다 필요없다. 이거 하나로 끝이다. 이게 철학이고 그걸로 땡이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답이다.

자동차란 무엇인가? 쇳덩이다. 이건 독일철학이다. 서비스다. 이건 일본철학이다. 마차다. 이건 영국철학이다. 자동차는 쇳덩어리이므로 쇠의 관점에 충실해야 한다. 쇠의 영혼이 있다. 쇠 자신이 원하는 길이 있다.

‘나는 이런 차가 좋아.’ - 이런 꼴통들이 문제다. 누가 물어봤냐고? 왜 자기소개를 하지? 너 말고 쇠를 소개하라고. 자동차는 쇠붙이니까 쇠에게 마이크를 줘야 한다. 왜 니가 나서서 주제넘게 마이크 잡으려 들지?

이런 씩씩한 관점이 필요하다. 걍 자동차는 동력성능과 강성에 충실해야 한다는 거다. 이걸 독일인은 안다. 영국인은? 모른다. 원래 자동차는 마차에다 엔진을 달아놓은 것이다. 쿠페니 세단이니 하는게 마차용어다.

마차를 타는 인간의 관점에서 자동차를 본다. 나와 자동차로 2인칭이 된다. 벌써 틀려버렸다. 곧 죽어도 철학은 1인칭이어야 한다. 나를 배제하고 자동차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내야 한다. 자동차는 달리고 싶다.

미국차나 일본차 역시 자동차의 철학 면에서는 독일에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독일인 특유의 어둡고 폐쇄적인 특징 때문이다. 독일인은 골목이나 광장에 나와있지 않고 자동차 안이나 집에 숨어 있으려 한다.

피서도 프로이센 군대식으로 하는 독일인들. 뭐 다 이렇진 않겠지.

그들은 해수욕장에 와도 텐트를 열심히 친다. 과거 로마군이 숙영지 짓듯이 튼튼하게 짓는다. 미국인에게 자동차는 이동수단이다. 일본인에게 자동차는 주인을 안락하게 해주는 서비스다. 영국인은? 하인이다.

자기를 고정시켜 놓고 자기 기분에 맞추라고 하면 안 된다. 그게 피해야 할 자기소개다. 차에 사람을 맞추어야 한다. 사람에 차를 맞추면 그 사람을 할배다. 할배 기준에 맞추게 된다. 할배가 가장 까다로우니까.

식사를 하러 간다고 치자. 일행중에 채식주의자가 있다면? 함께 밥을 먹으려면 가장 까다로운 사람의 기준에 맞추에 된다. 자동차에 대해서 가장 까다로운 사람은 할배다. 사실이지 롤스로이스는 할배맞춤 자동차다.

한국은? 할배 하고도 시골할배다. 중고차값을 높게 받으려면 중고차를 사 주는 사람의 기준에 맞추어야 한다. 누가 중고차를 사냐? 시골할배가 중고차를 산다. 빨간차 노란차 안 팔린다. 시골할배가 빨간차 사리?

한국 자동차가 망하는 이유는 시골할배 독점 자본주의 때문이다. 일본차 역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일본인들은 자동차회사에 평판공격을 한다. 이런 차도 있어야 하고 저런차도 있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소비자 비위에 맞추면? 일본 자동차회사들은 너무 많은 차종을 생산한다. 다양한 소비자의 기호에 모두 맞추다가 보면 점점 이상해지는 것이다. 결국 일본 소비자가 일본 자동차의 한계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도 문제가 있다. 허세가 심한 미국인들은 허세가 심한 자동차를 선호한다. 박찬호가 몰던 군용차 험비가 대표적이다. 허세부리다가 망한게 미국자동차다. 그들은 넓은 땅에 산다고 너무 큰 차를 만든다.

결국 일본이든 미국이든 모두 소비자에게 맞추고 사람에게 맞춘다. 2인칭, 3인칭으로 가는 것이다. 이게 평판을 좋게 받는 비결이 되기도 하지만 망한다. 1인칭으로 가야 한다. 자동차는 자동차에게 맡겨야 한다.

어떤 차가 좋은 차인가? 자동차가 좋아하는 차가 가장 좋은 차다. 그 자동차는 세스펜션이 딱딱하고 엔진음이 시끄럽더라도 달리기 성능에 충실한 차다. 차는 달리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디자인도 좋아야 한다.

‘차가 디자인이 뭐가 중요해? 내가 편하면 그만이지.’ 하는 태도로는 희망이 없다. 그건 철학이 아니다. 장인정신이 아니다. 장인은 자동차를 자기 자신의 신체 일부로 여긴다. 독일인들은 자동차를 신체의 연장으로 본다.

자동차 뿐만이 아니다. 집을 지어도 그렇게 짓는다. 한국인들은 가구를 만들어도 앞면만 그럴싸하게 해놓고 뒤는 대충 베니어판으로 막아놓는다. 집과 가구를 자기 신체 일부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발전은 없다.

철학은 그냥 1인칭 주체적 관점 하나 뿐이다. 자동차도 집도 옷도 모두 다 자기 신체의 일부로 여기는 것이 1인칭 주체적 관점이다. 한국인들은 집도 옷도 차도 남에게 보이기 위해 전시한다. 2인칭 넘어 3인칭이다.

집은 집을 만족시켜야 하고 차는 차를 만족시켜야 하고 옷은 옷을 만족시켜야 한다. 남에게 자랑할 이유도 없고 남에게 잘 보일 이유도 없다. 집이 좋아하는 집이 좋은 집이다. 차가 좋아하는 차가 좋은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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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4-07-1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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