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양자시대다. 양자는 전통적인 관념의 입자개념을 넘어선다. 양자시대의 결론은 세상이 궁극적인 단계로 올라가면, 입자가 아닌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장기판의 말처럼 기능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입자라면, 바둑알처럼 환경과의 상대적인 관계에 따라 2차적으로 기능이 정해지는 것이 구조다.
과학은 물질을 분자, 원자를 넘어 양자단위까지 쪼개보았다. 세상은 알고보니 구조의 집합이었다. 세상은 장기시합이 아니라 바둑게임이었다. 그렇다면 세상을 장기로 보는 세계관에서 바둑으로 보내는 세계관으로 바꿔줘야 한다.
무엇이 다른가? 장기는 말이 좋아야 한다. 차, 포 떼고 두면 진다. 사업을 하든, 전쟁을 하든, 정치를 하든, 예술을 하든 미리 차와 포를 다수 끌어모아야 한다. 바둑은 다르다. 유리한 공간의 위치와 시간의 순서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석유, 석탄과 같은 매장자원이 부족해도 장사만 잘 하면 된다.
장기는 메시와 호날두가 있으면 시합을 이기지만, 바둑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감독과, 주장과 조직력이 중요하다. 장기라면 관우나 장비같은 맹장이 필요하지만, 바둑이라면 사병위주의 전술훈련이 필요하다.
장기라면 사무라이처럼 적어도 3년은 검술을 연마해야 하지만, 바둑은 소총의 사격처럼 30분 안에 훈련을 끝낸다. 장기는 우수한 사관생도가 필요하지만 바둑은 농민을 끌어모아 급조한 군대로도 이길 수 있다.
21세기는 스마트 시대다. 스마트 시대는 장기가 지고 바둑이 이기는 시대이다. 아직도 장기판 경영을 한다면, 장기판식 정치를 하고, 장기판식 예술을 한다면, 그 사람과 그 집단은 패배하게 된다.
네이마르가 원맨쇼를 하던 브라질도 지고, 메시가 혼자서 이끌던 아르헨티나도 졌다. 바둑알처럼 고만고만한 독일이 이세돌의 행마와도 같은 유기적인 팀플레이로 이겼다. 세상은 장기가 아니라 바둑이다.
이러한 이치를 먼저 깨닫는 자가 승리한다. 무엇이 필요한가? 장기는 애초에 우수한 자원이 있어야 한다. 차와 포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바둑은 다만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할 뿐이다. 어디서 능력자를 데려올 필요도 없다.
다만 바둑은 단기전보다 장기전을 택해야 하고, 생존전보다 세력전을 선택해야 한다. 공간보다 시간을 점령해야 한다. 한신이 10면매복으로 항우를 뺑뺑이 돌려 시간공격을 가한 것과 같다. 그러려면 개인기보다 팀플레이로 가야 한다. 팀플레이는 집단의 의사결정능력에 달려 있다.
의사결정을 잘 하는 방법은 있다. 답은 1인칭 주체적 관점의 획득이다. 1인칭 주체적 관점은 바둑판의 네 귀를 모두 연결하여 하나의 큰 그림을 연출하는 것이다. 상대의 도발을 의식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의 집을 넓혀가는 것이다.
그 방법은 동적균형에 있다. 정은 크고 동은 빠르다. 동은 정을 이긴다. 동 속에 정을 갖추면 다시 그 동을 이긴다. 그것이 동적균형이다. 공간의 움직임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시간을 끌어내면 이긴다.
움직이지 않는 시간은 정교한 2대 1 패스처럼 타이밍을 정확히 맞추는 것이다. 시간의 약속에 임하여 동으로 변덕부리지 않고 정으로 그 약속을 지켜내는 것이다.
공간에서 약동하고 시간에서 엄중하라. 그것이 구조론의 정답인 동적균형이다. 비로소 올바른 의사결정은 가능하다.
묻노니 당신의 인생은 장기인가 바둑인가? 무작정 바둑이 능사는 아니다. 장기로 먹는 판은 장기로 먹어야 한다. 메시로 이길 때는 메시로 이겨야 한다. 그러나 지극한 정상의 경지는 다르다.
정은 식물과 같고 동은 동물과 같다. 동적균형의 주체적 1인칭관점은 그 동물이 팀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동물의 집단이 무질서한 군중이 되지 않으려면 시간 약속을 지켜야 한다. 동물로 이루어진 팀이 마치 한 사람의 손발처럼 약속 플레이로 움직이는 것이 1인칭이다. 그것은 약속을 지키므로 정이나 식물의 정과 다르다. 하나의 뇌를 이루므로 1인칭이나 개인의 1인칭과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