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론과 인식론**

이곳은 구조론 사이트다. 구조론이 뭔지 개념부터 잡아야 하며, 아직 개념을 못 잡았다면 질문할 자격이 없다. 구조는 골조다. 뼈다귀 국밥집에 와서 나는 살코기가 좋은데, 왜 뼈를 주느냐고 항의하면 곤란하다. 퇴장시킬 밖에. 구조론은 뼈를 주는 곳이다. 수학은 2가 1을 이긴다. 대통령 1이 장관 2를 자르는건 뭐냐? 그거 수학 아니다. 수학시간에 그런 소리 하면 초딩이다.

닭이 알을 낳는다. 알은 닭을 낳지 않는다. 이게 구조론이다. 알이 자라서 닭이 되잖아요? 그건 안 쳐준다.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이 닭이 되려면 어미닭이 품어야 하는데 그건 벌써 이론에서 벗어나 있다. 이론은 원래 그런 살을 뺀다. 뼈만 논하라니까 왜 자꾸 살을 붙이느냐 말이다. 닭이 앓을 낳고, 알이 닭이 된다는건 보통 사람이 하는 소리지만 그거 구조론이 아니다.

수학은 수학의 의도가 있으며, 규칙을 정해놓았고, 구조론 역시 구조론의 의도에 맞게 규칙을 정해놓았다. ‘낙타가 바늘귀 통과 못한다,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며, 낙타가 통과할만한 바늘 만들면 된다는건, 어깃장이지 맥락을 따른 것이 아니다. 맥락을 따르지 않을 의도가 있다면 반란군이며, 정치적인 반대자에게 시비하는 것이며, 구조론을 반대할 의도가 있다면 퇴장된다.

‘장미는 장미가 아니고 장미다.’ 하면 장미는 장미꽃이 아니고, 장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다. 근데 방금 장미가 아니래놓고’ 왜 이번엔 또 장미라고 말을 바꾸느냐, 변덕이 죽끓듯 하네! - 시비를 걸면 곤란하다. 그건 비아냥이다. 맥락은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이 정한 규칙을 따라줘야 한다. 독자가 임의로 의미를 바꾸면 안 된다. 그건 기본 한국어가 안 되는 사람이다.

‘장미는 장미이며 장미다.’ 하면 그게 Rose인지 아닌지는 본인이 패턴을 파악하여 알아채야 하며 모른다면 본인 잘못이다. 한 두 번 모르는건 질문할 수 있으나 정 모르겠다면 수준 안 맞으니까 이곳을 떠나야 한다. 대화가 안 통하는데 어쩌겠는가? 어깃장은 곤란하다. 어깃장은 본인의 한 마디로 상대방이 열마디 해야하는 구조를 만들어 상대방을 엿먹이는 기믹을 쓰는 거다.

여기서 기믹 쓰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근본적으로 이 사이트를 우습게 보고, 존중하지 않으며, 정신차리지 않고, 삐딱한 태도로, ‘니가 나를 설득해봐 내가 엿먹여줄게’ 하는 교만한 태도로 와서 있으면, 백날 가도 발전이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여기서 퇴장하거나 아니면 받아들이거나다. 장미가 장미인지 장미가 아닌지 판단이 안 서거든 더 이상 질문하지 말고 퇴장하시라.

분명히 말한다. 닭이 알을 낳는다. 알은 닭을 낳지 않는다. 이게 접수가 안 되면 더 이상 질문하지 말 것이며 이걸 접수했다면 다른건 그냥 무사통과다. 즉 에너지 기준이냐 아니냐다. 창은 방패를 뚫을 수 있지만 방패는 창을 막을 수 없다. 이게 구조론이다. 방패가 창을 막는 경우는 뭔데요? 그건 구조론이 아니고 골조가 아니고 살을 붙인 거다. 아 살 붙이지 말라고. 왜 붙여?

창은 창 투창수를 합쳐서 2지만, 방패는 방패 혼자 막는 거지 방패수의 힘으로 막는게 아니므로 1이다. 즉 수학인 거다. 1이 2보다 크다고 우기려면 철학수업으로 가야 한다. 배가 고파서 먹는다는 말은 에너지 메커니즘을 입증할 수 있다. 동물실험으로 위산이 들어오면 배가 자극되고 그럴 때 먹는다는걸 실험으로 입증이 가능하다. 살기 위해서 먹는다는 말은 입증불가다.

여기서 살기 위해서의 살기는 삶=인생 전체를 말하는 거다. 위해서라는 단어는 무조건 앞에 오는 말이 커야 맥락이 성립된다. 물론 개그맨은 일부러 뒤집는다. 그건 농담 하려고 그러는 거다. 위한다는 말 자체가 상대를 높인다는 뜻이기 때문에 당연히 높아야 하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먹는다는 말에서 살기는 인생이고 인생은 사람들이나 알아먹는 개념이지 동물은 모른다.

진리는 보편성을 채택하고 특수성을 배제한다. 즉 모든 경우에 맞는 것만이 맞는 것이며 어떤 경우에 맞는 것은 수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살아야 한다는 목표는 갓난 아기는 모르는 것이며, 뱃속의 태아도 모르는 것이며, 생쥐도 모르고 바퀴벌레도 모른다. 개미는 자기가 죽는다는걸 모르기 때문에 개미전쟁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기 위해서 먹는다는 말은 인식된 것이다.

인식된 것이므로 인식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인생이라는 개념을 잡은 사람에게만 성립되는 말이며 무개념 바퀴벌레는 자신이 왜 먹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조론에서는 살기 위해서 먹는다는 말을 배척한다. 보편성이 없기 때문이다. 학습된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말이다. 삶이라는 개념을 잡은 사람만이 의미를 알아먹는다. 구조론은 그런 살을 빼고 구조만을 취한다.

먹기 위해서 산다는 말은 농담이지 논리가 될 수 없다. 근데 산다는 말의 의미를 좁히고 먹는다는 말의 의미를 넓혀서 말이 되는것처럼 말을 만드는 것은 문학가의 기교이지 과학자의 논리가 아니다. 위하여 앞에 오는 개념이 커야 하므로 이 경우는 앞을 키우기 위해 사흘 굶었다고 부풀린다. 앞에 오는 말이 커야 한다는 근거가 어딨냐 해놓고 왜 사흘 굶었다로 왕창 키우는데?

앞에 오는 말이 커야 한다는 근거가 없다? 그럼 1초 굶었다고 하지 왜 사흘로 뻥튀기 하는데? 사흘로 늘리는건 앞에 오는 말이 커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멋대로 언어를 왜곡하고 말을 배배 꼬아서 나는 먹통이므로 니가 잘 알아서 먹통도 알아듣게 설명해봐 하는 요구는 기각된다. 장미가 장미라면 그 장미가 어떤 장미인지 본인이 알아야 한다.

  • 살기 위해서 먹는다의 살기는 인생 전체다. 의미가 크다.

  • 먹기 위해서 산다의 살기는 그 순간의 삶이다. 의미가 작다.

이렇게 말하다가 중간에 의미를 바꾸는건 이중플레이다. 이중기준의 오류다. 이런 짓 하면 안 된다.이게 아니면 저거다. 여기서 본인이 패턴을 분석해서 알아챌 몫이지, 이거 아니고 뭔데? 하고 질문하면 안 된다. 구조론은 대칭을 쓰므로 대칭을 적용하여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먹기 위해서 사는 넘도 분명 어딘가에 있기야 하겠지만 그거 구조 아니다. 구조는 대칭이다.

배가 고파서 먹는다와 대칭을 이루어야 채택이 되는 것이다. 존재론은 자연법칙이고 인식론은 인간이 학습해서 개념화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식론적 방법은 자연과 맞지 않다. 소설을 쓸 때는 문학의 방법으로 하고 달나라에 로켓을 보낼 때는 수학의 방법으로 하는 것이다. 문학전공자가 나사에 취직하겠다고 떼를 쓰면 곤란하다. 수학이 별도이듯이 구조론도 별도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인식론의 방법을 써야 하지만 전쟁을 이기려 할 때는 절대적으로 존재론의 방법을 써야 한다. 배가 고프면 먹어라고 지시를 하면 병사들이 식사시간을 지키는데, 살고 싶으면 먹어라고 하면 식사시간을 지키지 않는다. 24시간 항상 살고싶지 살고싶지 않을 때가 어딨어? 구조론은 구조론이 먹히는 상황에서 쓰는 것이며 그것은 리더가 중대한 결정을 할 때다.

창이 방패를 이기는게 구조론이다. 방패가 창을 이길 수도 물론 있지만 그것은 구조론이 아니다. 구조론과 구조론 아닌 것을 구분하는 훈련이 되어야 질문할 자격이 생긴다. 수학은 수를 다루며, 구조론은 자연의 에너지를 다룬다. 질문할 분은 지금 자기 생각이 에너지에 대한 것이냐 하고 자문해야 한다. 인간의 관념은 배제한다. 창에는 투창수의 에너지가 들어가 있는게 다르다.

아직도 ‘알이 닭을 낳는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은 퇴장해 주시기 바란다. 알이 닭으로 자랄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외부에너지가 들어가므로 무효다. 이론은 그런 외부환경의 간여를 차단해놓고 시작한다. 1 1=3이다. 왜냐하면 내가 몰래 한 개를 더 갖다놨거든. 이런 소리 하면 선생님한테 혼난다. 몰래 한 개 더 가져다 두는 에너지 투입은 배척된다. 그러기 없다는 거다.

수학시간에는 숫자를 써야하고 구조론 시간에는 구조를 써야 합니다. 구조를 쓴다는 것은 외부에너지 투입이 없이, 오직 구조의 최적화만으로 상대적 이익을 끌어내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외부 에너지 투입이 없으므로 플러스는 불가하고 마이너스만 가능합니다. 외부에너지가 있으면 그냥 에너지를 쓰지 뭣하러 구조론을 씁니까? 석유가 펑펑 나면 그냥 석유를 팔지 뭣하러 경제관료가 머리를 싸매고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거나 하겠습니까? 석유도 없고, 다른 모든 수단도 없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는 거죠. 전술을 강의하는데 핵폭탄 쓰면 되지 뭣하러 포위전 연구합니까? - 너 퇴장. 가릴 똥오줌은 가려야 합니다. 이곳은 추가에너지 투입 없이 오직 구조의 최적화만으로 상대적인 이익을 끌어내서 이긴다는 대원칙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창이 방패를 이긴다는 진리를 받아들여야 축구시합에서 맞는 전술을 구사합니다. 축구가 선수비 후공격인 이유는 일대일이면 공격수가 이기게 되어 있으며 갑작스럽게 수비수를 추가할 수 없기 때문에 주도권을 공격수가 가지기 때문입니다. 기습공격은 있어도 기습수비는 없습니다. 사전수비죠. 이걸 경험적으로 아는 것과 원리적으로 아는 것은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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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5-01-1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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