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스페인, 한국
그리스에서 시리자가 승리한데 이어, 스페인에서도 좌파정당 포데모스의 열기가 뜨겁다. 창당한지 1년 밖에 안된 신생정당 포데모스가 마드리드에 30만명을 모아 총선을 앞두고 레임닭된 보수정권을 위협했다고 한다.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50201184920121
한국도 그리스나 스페인과 같은 반도국가다. 과감한 의사결정을 하는 반도기질이 있다. 근간 스페인과 그리스의 몰락은 동유럽의 득세로 문명의 축이 대륙으로 이동함에 따라 반도국가의 지정학적 잇점을 잃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과거 스페인과 그리스가 먹던 것을 지금은 폴란드와 헝가리가 먹고 있다고 보면 된다. 독일과 러시아, 스웨덴의 중간에 끼어, 과거 세 방향으로 줘터지던 폴란드가 지금은 세 방향으로 이익을 챙겨먹고 있는 것이다.
역시 반도국가인 한국의 사정은 나쁘지 않다. 단군이래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반도국가의 잇점을 누려보려고 한다. 어쨌든 그리스와 스페인은 반도기질을 발휘하여 과감한 의사결정을 한다. 한국도 느끼는게 있어야 한다.
대륙이나 섬은 제로섬 원리가 작동하기 쉽다. 특히 고립된 섬이라면 누군가의 이익은 반드시 누군가의 손해로 된다. 손해보는 자들이 집단으로 반발하므로 의사결정은 실패한다. 대륙 역시 배후지를 끼지 못하면 섬이 된다.
러시아는 대륙이지만 항구를 얻지 못하면 손발이 잘린 신세라서 섬처럼 되는 것이다. 중국도 명나라 이래 자폐증으로 인한 고립주의로 오랫동안 섬이었다가 근래에 모택동의 호연지기와 등소평의 방향감각으로 살아났다.
한국은 반도인데 명박충들 때문에 북쪽으로 막혀서 점차 섬이 되어가고 있다. 정신차려야 한다. 반도는 제로섬을 피할 수 있다. 중개를 잘하면 구조론에서 말하는 ‘발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베니스의 상인에게 배워야 한다.
베니스와 제노바의 상인들이 동로마 황제를 부추겨서 십자군을 일으키게 하고서는 해상보급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중간에서 돈을 챙기다가, 오스만 제국의 메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자 수수방관한 것과 같다.
결국 메메드 2세가 동로마 황제를 참칭하게 되었다. 악랄한 배신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대세를 읽은 과감한 의사결정이다. 어느 쪽이든 남겨먹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꾸는 것이 반도기질이다.
한국인도 철옹성같던 이명박근혜 지지에서 순식간에 태도를 바꿀 수 있다. ‘고려공사 3일’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의사결정을 미루는 중국의 만만디 기질과는 다르고 집단을 중요시하는 일본의 와和사상과 다르다.
진보냐 보수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집단의 의사결정능력이다. 능력은 힘에서 나오고, 힘은 신분상승에서 나온다. 물리력이 아니라 의사결정의 힘이다. 보수의 힘은 돈을 벌어 신분상승을 이룬 졸부나 중산층에서 나온다.
◎ 보수의 의사결정 힘 – 돈에 의한 신분상승
◎ 진보의 의사결정 힘 – 팀플레이 참여에 의한 신분상승
진보의 힘은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에서 나온다. 그런데 어느쪽 신분상승이 그 시대에 더 의미가 크냐다. 어느 쪽 신분상승이 더 시대분위기와 맞아떨어지는 신분상승이냐다. 시대의 바람이 방향을 바꾸면 대중의 판단도 바뀐다.
대중은 자신의 신분이 상승할 때 지도자를 밀어준다. 민주주의가 국민의 신분을 상승시키고, 신분상승을 이룬 국민이 강력한 지도자를 탄생시킨다. 87년의 민주화 운동을 통한 대중의 신분상승이 김대중, 노무현을 탄생시켰다.
농노에서 시민으로 신분상승을 이룬 프랑스 농부들이 나폴레옹의 권력을 만들었던 예와 같다. 불법이민자 신분에서 시민권자 신분으로 신분상승을 이룬 히스패닉계가 투표에 참여하여 오바마의 카리스마를 만들어주고 있다.
공화당은 졸부로 신분상승한 자들이 부시의 권력을 만들어주는데 비해, 민주당은 잘난 논객들이 씹어서 카터를 망신주고 지도자를 바보만드는 패턴이었다. 미국에서 지식에 의한 신분상승은 불가능이니까. 한국도 마찬가지.
신분을 봉건시대의 계급개념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부가 신분상승의 수단일 뿐 아니라, 문화도 신분상승의 수단이다. 컴퓨터가 보급되면 네티즌이라는 신분이 생기고, 스마트폰이 보급되면 모바일 신분이 생기는 것과 같다.
신분상승의 의미는 사회의 더 높은 레벨에서 일어나는 집단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데 있다. 세습정치인이 득세하는 일본이나, 중앙정치에 무관심한 중국인들은 심리적으로 국가의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만큼 신분이 낮다.
문화적인 격려로 국민이 잃어버린 자존감을 회복할 때도 권력은 만들어진다. 권력은 권리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며, 권리는 근본 창의와 혁신 그리고 의사결정에의 참여에서 나오는 것이다. 구조론에서 말하는 발권력 개념과 같다.
계획을 세우고 일을 주도하는 자에게 권리가 있다. 나간 사람 몫은 있어도 자는 사람 몫은 없다는 말이 있다. 권리는 참여가 만든다. 사건의 초기 단계에 참여해야 갑이 된다. 을에게는 권리가 없다. 을이 된 즉 신분하락이다.
대중의 열망은 ‘뒤늦게 통보받는 자’에서 ‘먼저 결정하는 자’로 상승하는 것이다. 봉건계급은 사라져도 의사결정의 계급은 불변이다. 한국이 2007년 이후 보수화 된 것은 대중의 심리적 신분상승이 멈추어버렸기 때문이다.
젊은이의 IT신분이 등장하면서, 특히 김어준이 갑을 잡으면서 기성세대는 자동으로 을이 되었다. 그들은 신분하락을 느끼고 분노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도 정치의 정답은 대중의 신분상승이다. 상승의 여지는 남아있다.
87년 이후 독재국가의 노예에서 민주국가의 시민으로 신분이 상승하였다. 그리고 제 2탄이 나와주어야 한다. 고립주의 자폐증을 극복하고 세계시민으로 나아가려면 우리에게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이 필요하다. 세례가 필요하다.
FTA 반대 등으로 배타주의, 국수주의에 빠진 초딩진보가 국민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기는 커녕 열패감만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자존감을 잃어버린 노예들이 돈에 의한 신분상승을 주장하는 이명박의 캠페인에 넘어간 것이다.
어떻게 한국인들에게 자존감-신분상승을 시켜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계몽을 통해서 지식을 주입해주면 된다? 21세기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은 곤란하다. 강소국?
내부적으로는 을에서 갑으로 신분상승해야 하며, 외부로도 세계의 을에서 갑으로 신분상승해야 합니다. 한국인은 대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대접받아야 하고, 학교에서도 대접받아야 하고, 회사에서도 대접받아야 하고, 국가로부터도 대접받아야 하고, 세계로부터도 대접받아야 합니다. 단지 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다 용서되어야 합니다. 심지어 범죄자도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난방이 잘된 감옥에서 따뜻하게 엉덩이를 지져야 합니다.한국인만의 특권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물론 자기 스스로도 대접받을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