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이 쉬운 이유
구조론은 쉽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에게는 어렵다는 말이 된다. 구조론은 쉽지만, 초심자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세계관을 바꾸는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의식 중에 복제해 먹는 아이디어의 원천이 있다. 그걸 뜯어고쳐야 한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문제다.
입자의 세계관을 버려야 한다. 그거 잘 안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뇌가 원래 입자의 세계관으로 세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뭔가 심리적으로 타자에 대항하고 맞설 때 뇌가 팽팽 잘 돌아가도록 세팅되어 있다. 도박심리와 같다. 대결이 벌어지면 뭐든 더 잘 한다. 당신이 주식투자를 한다고 치자.
그냥 하는 것보다 파트너를 정해놓고 대결하면서 투자기법을 공개하도록 하면 더 잘한다. 인간은 원래 상대방의 행동을 보고 자기 행동을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부족민이 정글이나 사바나에서 생존하면서 터득한 생존본능이다. 그 본능을 버리고 구조론의 세계로 들어와야 한다. 쉽지 않다.
‘1 1’은 ‘큰 1’이지 왜 그게 2가 되느냐고 따지는 사람은 제압해야 한다. 쉽게 제압된다. 왜? 이걸 배울 나이가 겨우 5살이기 때문이다. 5살 소년은 어른의 위력과시에 주눅들어 제압된다. 진도 나간다. 그런데 30살이 넘게 먹은 어른이 교실에 와서 앉아있다면? 실패한다. 아마존의 눈물에 나왔다.
부족민들이 몇 년째 배우고 있는데 아직 알파벳도 떼지 못했다. 그 장면을 지켜본 한국의 시청자들은 ‘아! 아마존 부족민은 지능이 떨어지는구나.’ 하고 판단할 것이다. 과연 그런가? 그런데 어린이들은 잘 배운다. 어른이 못 배우는 거다. 어른은 대항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으므로 배울 수 없다.
1 1의 값이 1인지 2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패턴이다. 1 1이 2면, 2 2는 4가 되고, 3 3은 6이 된다. 여기서 1,2,3으로 가는 패턴과 2,4,6으로 가는 패턴이 일치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견해가 맞는지는 상당히 진도를 나가보고 난 다음에 판단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므로 바보들은 진도를 안 나가고 버티는 수법을 쓴다. 2,4,6으로 가면 설득될 것 같으니까 1 1에서 버틴다. 알아듣게 증명하라며 고집을 피운다. 증명해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결국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제압이다. ‘네가 나를 제압해봐.’ 이런 거다. 그러나 절대 제압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버드 박사학위 따위의 권위에만 제압되기로 마음을 굳혀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 굳히기는 평생을 들여 이룬 나름의 업적인데. 그걸 쉽게 바꾸겠느냐고. 쉽게 제압되지 않는게 정상이다. 그러므로 조금도 진도를 못 나가는게 정상이다. 그러므로 구조론이 어려운게 정상이다.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은 대부분 문턱에 걸려 있다. 그 문제는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므로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 물론 세월이 흘러 구조론이 힘을 가지게 되면 그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 이런 ‘문턱의 딜레마’ 때문에 고흐도 고생을 하고, 김기덕도 고생을 하고, 노무현도 고생을 하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사실 근대의 과학문명은 인간의 유전자 설계에 없는 특수상황이다. 인간의 진화는 300만년에 걸쳐 일어났는데 과학의 역사는 기껏해야 300년이다. 한국인에게는 100년도 안 된다. 한국인들은 창경궁에 에디슨의 전구가 켜졌던 110년 전에 처음으로 과학을 접했다.
화물교 소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 보통은 인지부조화 현상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그게 과연 인지부조화 한 마디로 넘어가도 되는 간단한 문제일까? 천만에. 부족민은 바로 반격 들어간다. 우리가 존 프럼을 기다린 역사는 기껏해야 50년인데 그대들은 2천년 동안이나 예수를 기다려온 것 아닌가?
그렇다. 화물교가 폴리네시아 섬들에 국한되는 특이현상은 아니다. 인간의 본래 모습이다. 화물교의 교리가 음모론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나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천안함을 북한소행으로 알지만, 명박정부를 믿을 수 없으므로 합리적 의심을 하는 걸로 여겼다. 그런데 아니더라.
지금은 이게 다 김어준의 음모론 놀이에 영향받은게 아닌가 하고 추측하게 되었다. 김어준의 음모론 놀이는 뻔하다. 수익자 부담의 원칙! 성완종 사태로 인한 최대손실은 반기문, 최대수익은 김무성, 그럼 김무성이 꾸민 짓이네. 답 나왔네. 오호라! 이거 졸라리 재미가 있다. 그러다 부족민 된다.
그런 손자병법식 음모론은 실패한다는 게 구조론의 가르침이다. 잔꾀 부리면 잠시 성공하지만 결국 뒷탈이 난다. 구조론적으로 모든 속임수 행동은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치는 항명의 구조이므로 물리적으로 뒷탈이 날 수 밖에 없다. 오히려 역음모가 더 많다. 역사를 공부한 사람은 알게 된다.
실제로 역모를 꾸민 사건보다 ‘네가 역모를 꾸몄지. 다 알고 있어. 조사해 보면 다 나와. 네 동무도 불었어.’ 이렇게 누명을 씌워 정적을 제거한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조선시대 당쟁이 대부분 이런 역음모의 구조로 되어 있다. 음모보다 있지도 않은 음모를 발각하는게 더 쉽다. 온통 음모판이다.
음모를 꾸미려면 사전에 회합해야 하지만 누명을 씌우는건 그냥 소설을 쓰면 된다. 음모는 최소 2인에 의해 가능하나 역음모는 혼자로도 가능하다. 김어준의 음모놀이는 혼자서도 가능한 역음모에 불과하다. 물론 김어준이 국정원의 음모를 터뜨린건 인정해줘야 한다. 그런데 거기 재미들렸다.
화물교 교리는 하느님이 부족민에게 화물을 내려보냈는데, 백인과 선교사가 중간에서 빼돌리고 있다는 거다. 문제는 음모론의 진화다. 백인들은 화물교 교주와 부족민 유력자들을 초청해서 공장을 견학시키지만 오히려 음모론은 더욱 진화한다. 공장에서 다 봤는데 노동자들이 빈손으로 퇴근하더라.
구조론이 옳은지 그른지는 구조론 내부의 논리를 1,2,3으로 전개시켰을 때 결과가 4,5,6으로 매치가 되는지 보고 판단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신 구조론에서 금지하는 대칭행동을 하는 것이다. 진도 나가기 거부하고 입구에서 버틴다. 경상도 할머니가 선거때만 되면 하는 말과 같다.
“민주당 너희가 우리집 앞까지 사차선 도로를 깔아줘봐라. 내가 너희 이쁘다고 찍어주나? 절대로 안 찍어준다.” 그들은 충성맹세 하듯이 골목에서 이렇게 외치고 다닌다. 이런 태도로는 구조론을 이해할 수 없다. 사람은 먼저 제압되어야 하고 제압은 5살 일때나 가능한데 이미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단순한 인지부조화가 아니다. 원래 투표는 이익을 따라 하는게 아니다. 그들은 외로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단지 ‘우리편’을 필요로 할 뿐이다. 이 사이트의 방문자도 마찬가지다. ‘내 편’을 원한다. 벌써 틀어졌다. 음모론은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한다. 그래야만 기운이 나고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간다.
부족민과 대화한다고 치자. 염소가 새끼를 유산한 것은 마녀의 저주 때문이 아니라 바이러스 때문이다 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면? ‘아! 바이러스 저주. 그거 참 독한 저주네요. 때려죽일 사악한 마녀!’ 그게 저주가 아니고 세균 때문이라니깐. ‘아! 세균저주? 악랄한 저주네요. 쳐죽일 마녀 아닌가.’
절대 진도 안 나간다. 구한말 조선인의 모습도 같다. 일본은 미국 흑선의 함포사격에 굴복했고, 조선인은 창경궁에 켜진 에디슨의 전구에 굴복했다. 그들은 설득된 것이 아니라 제압된 거다. 구조론을 아는 사람 입장에서 모르는 사람을 상대하는건 부족민을 상대하는 것과 같다. 제압의 대상이다.
아직도 지구인의 대다수는 종교를 믿는다. 중국은 공산국가라 종교를 없애서 그렇지 그들 스스로의 판단으로 종교를 극복한 것이 아니다. 종교의 논리가 본질에서 음모론의 변종이며 화물교 신앙과 정확히 같다는 점을 살펴야 한다. UFO나 외계인 소동, 귀신소동, 기 소동, 궁합소동도 마찬가지다.
종교는 안 믿지만 귀신은 믿는다? 그 사람은 종교를 믿는 사람이다. 무신론자인데 공산주의를 믿는다? 역시 종교를 믿는 거다. 제압되어야 하는 사람이다. 종교를 안 믿지만 부시에게 투표했다? 역시 부족민이다. 원래 인간은 부족민으로 태어났고 다만 문명의 세례를 받아 근대인으로 거듭난 거다.
겉보기는 근대인이나 속은 부족민이다. 봉건인이다. 과학문명은 인간이라는 동물 종의 몸에 잘 맞는 옷이 아니다. 유전자는 여전히 인간에게 원시의 들판에서 배회하라고 명령한다. 인간이 합리적으로 판단할 때도 드물게 있다. 그것은 2,4,6으로 가는 흐름 안에 자신이 있을 때다. 결따라 가는 것이다.
일베판사도 합리적으로 판결한다. 시스템 안에서 호흡하기 때문이다. 창조설을 믿는 창조과학회 교수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자기 제자를 잘 가르친다. 그러나 그들이 결에서 벗어나 절대성의 포지션을 차지하면? 정치판 들어온 안철수 꼴 난다. 대학이라는 시스템 안에서는 안철수도 때깔이 난다.
낯선 영역에 들어오면 본래의 바보로 돌아간다. 야만의 본색을 드러낸다. 서울시장 출마여부도 가족에게 물어보고 결정할 정도로 의사결정 못하는 바보다. 전투화 끈 하나를 못 매서 고문관 소리를 들은 이창호 국수도 바둑판에서는 왕이다. 자기분야에서는 누구나 잘 하는 것이다. 흐름을 타면 되니까.
게임은 2,4,6으로 전개한다. 보나마나 다음은 8이다. 그 다음은 10이다. 패턴을 알면 쉽다. 이게 결따라 가는 거다. 문제는 1에서 서성대는 경우다. 패턴을 모른다. 그 세계 안쪽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주도권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결국 구조론을 현실에 적용해서 이익을 볼 사람만 여기에 남는 거다.
무엇인가? 구조론은 바로 그러한 인간의 생존본능과 싸우는 거다. 머리만으로 안 되고 용기가 필요하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강단이 있어야 한다. 호연지기가 필요하다. 한 번 진리를 보면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구조론은 쉬운 길로 가는 것이다. 중국수출 화장품주 오른다고 작년에 말했다.
과연 올랐다. 중국은 나라가 커서 의사결정에 시간이 걸리므로 한국에서 3개월 가는 붐이 중국은 10년 간다. 세계시장으로 가면 더 커져서 20년 간다. 코카콜라가 과거에 승승장구한 비결이다. 워렌버핏도 이거 하나로 명성을 얻었다. 시장의 규모만 보고 판단한다. 특정지점에서 느려지는걸 포착한다.
그런데 알려줘도 안 한다. 왜? 너무 쉽기 때문이다. 반면 이 회사 주식에 이런 정보가 있는데 나만 아는 거야. 이러면 잘 넘어간다. 개미들은 개잡주를 좋아한다. 너무 쉬우면 판단할게 없고 판단할게 없으면 주식을 안 보게 되고, 안 보면 흐름을 놓치고, 자신이 흐름에서 밀려났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래서 개미들은 한사코 개잡주 뿐이다. 음모론 같은 말도 안 되는 정보 주면 좋아한다. 당신이 그러한 질병에 걸려 있다는걸 인정해야 한다. 주식을 하고 싶다? 일년에 딱 두 번만 거래하면 된다. 봄 가을에 한번씩 중국관광객이 연휴를 누리는 기간이 있다. 그때 날자 받아놓고 중국주 오른다. 쉽잖아.
왜 사람은 어려원걸 잘 판단하면서 쉬운건 못 판단할까? 쉬운건 상대성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상대의 카드를 보고 내 카드를 결정하려는 심리 때문이다. 그 심리만 극복하면 세상은 쉽다. 인간은 고민할 이유가 없다. 남이 알아주든 말든 내가 합리적인 판단을 하면 된다.
내가 합리적인 판단을 했는데도 세상이 나를 무시하면? 그건 세상의 잘못이다. 세상이 잘못했으면 내가 이긴 거다. 내가 이겼으면 쾌재를 부를 일이 아닌가?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매우 기분이 좋아야 한다. 좋은건 나눠가지는 것 보다 혼자 독점이 더 짜릿한 것 아닌가? 그래서 구조론은 쉽다.
인간은 99퍼센트 오판합니다. 당신의 첫 번째 판단은 무조건 오판입니다. 원래 입자를 중심으로 사유하면 그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워렌 버핏 같은 떼부자가 나오는 겁니다. 단지 99퍼센트와 반대로 가면 되니까. 그래서 세상에는 스티브 잡스가 있고, 고흐도 있고, 노무현도 있는 겁니다. 그냥 반대로 가면 됩니다. 너무 쉽잖아요. 남들이 따라오지 않는다고요? 더욱 좋잖아요. 독점인데. 주말에 야외로 가는데 저는 사람 없는데만 골라 갑니다. 대부분은 바글바글 하는 곳으로 가서 뭐가 어떻다며 투덜대더군요. 왜 그런지 알아. 그래야 맘이 편안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