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의 슬픔
나도 소년 때는 창세기 첫 줄에 뭐라고 써놨는지 궁금해서 흥분되는 마음으로 몇 줄 읽어봤던 것이다. 창세기 첫줄에는 당연히 ‘지구는 둥글다.’고 씌어져 있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사라져 버리는데 다음날 짠 하고 다시 동쪽에서 나타난다. 신기하다. 고대인의 관점에서 이 궁금증을 풀지 않고는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눈 닦고 봐도 ‘지구가 둥글다’는 말은 거기에 없었다. 실망해서 던져버렸다. 창세기의 수준은 소년의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만들지 못한다. 수준이하다. 도대체 어떤 머리 나쁜 자가 이런 거창한 이름 내걸고 이렇게 조악한 글을 남겼을까? 나중 구조론을 연구하면서 창세기를 다시 봤는데 그나마 건질 것이 있었다. 모형적인 사고가 일부 반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치하다.
왜 빛의 속도는 초속 30만킬로라고 창세기에 써놓지 않을까? 왜 파이의 값은 얼마라고 거기다 써놓지 않았을까? 왜 태양을 도는 행성의 숫자는 써놓지 않았을까? 왜 신대륙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을까? 왜 암치료법을 써놓지 않았을까? 왜 히틀러의 탄생은 예고하지 않았을까? 인종과 피부색 차이에 대해서도 창세기에 해명해둬야 한다. 그래야 인간들이 탄복하며 꺼벅죽을거 아닌가?
하여간 자기보다 머리 나쁜 자에게 쉽게 굴복하는 바보들과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 창세기의 저자는 평균적인 인간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똑똑하다는 점을 보이지 못했다. 사기를 쓴 사마천은 그걸 해냈는데 말이다. 하얀 눈길을 맨 처음 가는 사람은 뒷사람을 의식해야 한다. 뒤에 오는 사람은 앞사람의 발자국을 밟고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미친 놈이 눈길을 맨 먼저 가면? 망한다.
창세기는 그 순수한 처음에 대한 기록이다. 근데 개판으로 써놨다. 하얀 눈길에 술취한 개가 먼저 지나갔더라. 실망이다.
창조론, 기, 몸에 좋다, 귀신, UFO, 초능력, 죽염.. 이런 거 이야기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깊은 슬픔을 느낀다. 부족민하고 이야기하는게 차라리 쉽다. 에휴! 누구도 존 프럼교 신도들을 계몽하지 못했고, 누구도 시체를 무서워 하는 마사이족을 교화하지 못했다. 그거 원래 안 된다. 왜?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전제의 전제가 또 있다. 다른 문명의 사람과 대화하는 데는 많은 전제조건이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수화 비슷한 손동작을 많이 쓴다. 그리스 사람들은 걸핏하면 성모마리아 어쩌구 하며 성호를 긋는 등 대화중에 이상한 행동을 한다. 부시맨은 혀를 끌끌 차며 기이한 소리를 낸다. 이러면 대화할 수 없다. 적어도 글 배운 사람과의 대화라면 이탈리아인의 손동작, 그리스인의 성호긋기, 부시맨의 혀차기 행동은 금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른들과의 대화에서는 기본 전제다.
그런데 말이다. 창조론, 기, 몸에 좋다, 귀신, UFO, 초능력, 죽염 등은 그런 부족민의 기괴한 관습인 것이다. 아 그런거 좀 하지 말라고. 대화하려면 말이다. 이번에 일어난 백수오 소동도 마찬가지다. 전제의 전제의 전제가 있다. 전제 1. 백수오는 하수오인가? 전제 2. 백수오는 효과가 있는가? 전제 3. 이엽우피소는 효과가 없는가? 전부 거짓말이다. 백수오소동은 종편이 만들어낸 것이다.
만약 그대가 백수오가 효과가 있다는둥 없다는둥 나와 대화를 시도한다면 나는 그대를 어떻게 볼까? 당신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다만 ‘종편이 사람 많이 버려놨군’ 이러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시국을 한탄한다. 대화상대가 돼? 이명박이 종편이라는 사탄을 투척했을 때 예고된 소동이다. 그런데 왜 종편을 까지 않고 애꿎은 백수오 경작 농가만 피해를 봐야 하지? 이건 정말 슬픈 거다.
그렇다. ‘백수오’ 하면 ‘종편’이 나와야 대화가 되는 거다. 내가 백수오를 외쳤는데 당신이 종편이라고 호응하지 않으면 대화는 없다. 전제의 전제의 전제가 너무 많아서 말이 안 통한다. 창세기 소동에도 많은 전제의 전제의 전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화가 안 되는 것이다. 진지한 대화를 하려면 그 전제의 전제의 전제를 까야 한다. 그러나 아직 그런 용기있는 창조론자는 보지 못했다.
하여간 창조론, 기, 몸에 좋다, 귀신, UFO, 초능력, 죽염, 백수오. 남자한테 참 좋은데. - 이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어가 안 되고, 언어학을 안배웠고, 논리학을 안 배웠고, 생각을 어떻게 하는지 생각학을 안 배웠다. 하긴 가르치는 데가 없는데 배웠을 리가 있나. 그래서 문제다. 그 사람들만 탓할 수 없는게 왜 그 기본을 교과서에서 안 가르치느냐 말이다. 당신은 생각하는 방법 배웠어?
생각은 이렇게 하라. 주장은 이렇게 하라. 언어는 이렇게 써라. 이런걸 초등학교에서 당연히 가르쳐야 하는거 아니냐 말이다. 이런 기초가 안 된 사람에게 구조론이 무리다. 초보적인 대화가 안 된다. 시체가 무섭다는 마사이족과 어떻게 대화를 하겠는가? 그 어떤 언변이 좋은 백인도 해내지 못했다. 나 역시 창조론자를 설득할 수 없다. 대신 나는 그들을 시체공포증 걸린 마사이족으로 본다.
‘시체 따위를 무서워 하다니. 너 겁쟁이냐?’ 하고 꾸짖어봤자 먹히지 않는다. 사자도 무서워하지 않는 용맹한 마사이족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말했지만 창조론은 진화론과 아무 관계가 없다. ‘창조냐 진화냐’ 이렇게 딱 대칭되는게 아니다. 이렇게 나눠진다고 믿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지능이 떨어지는 거다. 그런 돌과 대화할 필요가 있느냐고? 차라리 동물원의 오랑우탄과 대화하는게 낫지.
농부가 씨앗을 뿌려서 싹이 나고 결실이 있으면 그것은 농부가 만든 건가? 그럼 닭이나 오리는 농부가 창조한 건가? 농부가 만든게 아니다. 무엇인가? 농부는 만든 사람이 아니라 기른 사람이다. 만들다와 기르다 구분 되는가? 토기는 누가 만들었을까? 토기장이가 만든게 아니고 지은 것이다. 만들다와 짓다 구분되는가? 집을 짓듯이 토기장이는 지은 거다. 재료는 자신이 만든게 아니다.
가끔 농담으로.. 부산 지하철 부산진역에서 토성동 구간 내가 다 만들었지. -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그거 내가 만든거 아니다. 나는 거기서 계단에 돌 몇개 깔았을 뿐이다. 생각해보니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도 내가 지은거 같지만 어디 가서 그거 내가 지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왜? 토기장이가 만든건 뭐든 만든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건 원래 안 쳐주는 거다. 부디 헷갈리지 말자.
농부가 곡식을 기르듯이 목수는 집을 짓는다. 농부에게는 씨앗이 주어져 있고 목수에게는 재료가 주어져 있고, 토기장이에게는 진흙이 주어져 있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 치자. 만든 사람은 일단 만든 사람이 아니다. 부모는 자식을 만든 사람이 아니다. 낳은 사람이다. 만들다와 낳다 구분되는가? 생물 종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종은 교배의 단위일 뿐 존재의 단위가 아니다. 착각하지 말라.
진화론의 어디가 틀렸고 이런걸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것과 창조론은 아무 관련이 없다. 그걸 연결시키는 사람은 아이큐가 돌이다. 바보냐? 염소나 닭이나 개를 창조했다는 것은 정말 웃기는 소리다. 그런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독립적인 의사결정단위로 존재하는가? 염소가 어딨어? 그런건 없다. 자연에 염소가 없는데 어찌 염소를 창조하겠는가? 그런 구분은 인간의 편의다.
그럼 개는 신이 창조했고 믹스견은 인간이 창조했냐? 드디어 인간도 창조주 반열에 등극? - 농담은 되나 진지하게 할 이야기는 아니다.
목 위에 머리라는 것을 올려놓았거든 생각이라는걸 해야 한다. 그러나 생각한 증거가 없다. 눈 닦고 봐도 없다. 무슨 생각을 했는뎅? 생각한 적 있어? 창세기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지어낼 수 있다. 염소나 닭이나 돼지는 기르거나 짓거나 낳는 것이지 그거 만드는게 아니다. 그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아바타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만드는게 아니다.
그건 프로그램에 만들어져 있는걸 빼온 거다. 옮긴 거다. 그럼 프로그램은 누가 만들었지? 프로그래머가 창조자인가? 아니다. 그 전에 프로그램 언어가 있었다. 그럼 C언어를 만든 자가 창조주인가? 아니다. 그 전에 컴퓨터가 있었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가 창조주인가? 아니다. 그 전에 반도체가 있었고 전기가 있었다. 그럼 에디슨이 창조주인가? 아니다. 진짜는 개체가 아닌 시스템이다.
당신이 어떤 것을 말하든 당신은 개체를 말한다. 역시 숨은 전제가 있다. 그것은 개체가 존재의 기본단위라는 전제다. 근데 이 전제 누가 만들었어? 웃기고 있네. 개체는 하부구조에 종속되므로 존재의 단위가 아니다. 개체 사람이 있기 전에 인류가 먼저 있었다. 그러므로 당신이 누구를 지칭하든지 간에 어떤 지칭될 수 있는 것은 만든 자가 될수 없다.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대화가 된다.
그렇다. 당신이 무엇을 말하든 말하면 이미 틀려버린 것이다. 내가 해줄 말은 닥쳐! 이런 언어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과 대화가 되겠는가? 시체가 무섭다는 마사이족은 그냥 계속 무서워하게 둘 뿐이다. 시체라는 독립적인 개체는 없다. 죽으면 이미 지구의 일부인 것이며 흙이다. 시체가 무서운 사람은 시체가 아닌 흙을 옮기면 된다. 그게 시체라는 근거가 어딨어? 역시 전제가 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거짓에는 전제의 전제의 전제가 들어가 있다. 이런걸 시시콜콜 파헤치기는 피곤한 노릇이다. 자연에 생물 종은 존재하지 않으며 생태계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생태계 시스템은 무생물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창조하려면 그 창조자도 시스템이어야 하는 것이다. 시공간과 물질을 포괄하는 우주의 에너지 시스템이 생태계 시스템을 창조했다면 말이 된다. 그게 구조론이다.
입에서 언어가 아닌 것을 뱉어내면서 언어라고 우기는 자는 입을 때려줄 수 밖에 없다. 방법이 없다. 그 어떤 백인 과학자도 시체를 무서워하는 마사이족을 설득할 수 없다. 대신 마사이족이 병에 걸렸을 때 치료해준 다음 교회로 데려가서 세례를 베풀고 넌 세례를 받았으니까 오늘부터 시체를 무서워하지 않는 백인이다. 이렇게 말해주면 1초만에 해결된다. 인간 자체를 바꾸는 수 밖에 없다.
날 설득해봐라. 못하지? 약오르지? 낄낄. - 이런 태도를 보이는 야만인은 설득하지 않는다. 전제의 전제의 전제 때문이다. 시스템이 대답하는 것이다. 구조론은 개체가 아니라 시스템을 상대한다. 당신이 아플때까지 기다렸다가 치료해준 다음 당신의 인종을 바꾼다. 피부색을 바꾼다. 이것이 구조론의 시스템 방법이다. 당신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일단 죽인다. 안죽었다고? 답 없다.
원래 인간은 말로 설득되지 않습니다. 시스템의 문제 때문입니다. 일본인은 설득된게 아니라 흑선의 함포사격에 굴복했고, 조선인은 설득된게 아니라 창경궁의 전깃불에 매료된 것이며, 기독교도는 예수의 사랑에 설득된게 아니라 하느님의 권세에 매료된 것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다음 단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일본에 대포를 쐈으니까, 다음 단계는 일본이 조선에 대포를 쏠 차례. 에디슨이 창경궁에 전구를 달았으니까, 다음 단계는 조선이 중국에 전구를 달 차례. 하느님의 권세가 사람들을 교회에 불러모았으니, 다음 단계는 내가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낚을 차례. 이렇게 다음 단계를 보고 인간이 움직인다는게 시스템입니다. 개체가 개체를 창조하는게 아니라 시스템이 시스템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개체는 창조되는게 아니라 낳거나 짓거나 꾸미거나 기르는 것입니다. 그 어떤 개체든 개체는 독립적인 의사결정단위가 아닙니다. 개체는 컴퓨터 게임 속의 아바타에 불과한 것이며 개체에 에너지를 주는 자는 별도로 있습니다. 당신이 어떤 것을 말하든 말하면 이미 틀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