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구조론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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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로 인한 미국 스푸트니크 쇼크 교육관련 항목 위키검색이다.-
스푸트니크 쇼크의 교육적 측면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로 미국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1950년대 쾨르너, 베스토 등의 미국 교육학자들은 경험중심 교육과정을 비판하며 소련의 우주과학기술에 비해 미국의 기술이 뒤쳐지게 된 이유를 교육에서 찾았다.
경험중심의 교육과정은 학교가 학생의 일상생활과는 별로 관계없는 지식의 체계를 교육하는 데 대한 반발로 나온 것이다. 20세기 초의 진보주의 교육운동과 함께 출발한 이러한 주장은 어린이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뜻에서 교육과정에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교육과정은 어린이의 욕구와 필요에서 출발해야 하고, 생활경험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학습동기를 높이고, 학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또 학습생활을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게 하며,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갖게하여 전인교육의 방법이 될 수 있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과정은 문화유산을 학습하고, 각종 경쟁시험에서 승리해야 하는 측면을 소홀히 하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
소련은 1945년에 그들의 우주프로그램을 출발시켰으나, 미국은 1954년까지 우주계획을 진행하지 않았다. 미국의 석학들은 정치 및 군사계획자들이 잘못 판단했다고 말했지만, 매카시 상원의원은 이 사건을 교육에 책임을 지웠다.
따라서 미국의 교육과정이 경험중심의 교육과정에서 학문중심의 교육과정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결국 학문중심의 교육과정은 스푸트니크 사건을 계기로 힘을 얻게 되었다. 학문중심 교육과정의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1960년 브루너에 의하여 출판된 『교육의 과정』이라는 세미나 보고서다.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 후 미국교육의 개념과 법칙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이들 내용을 크게 보면 교육과정의 내용을 사실, 개념, 법칙 등 지식의 구조를 따라서 조직해야 한다는 교육과정의 구조화, 교수방법에서 학습자가 학습하는 가운데 스스로 원리를 발견하고 응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발견학습 또는 탐구학습의 주장이다.
즉 교육내용의 조직과 관련해서 교육과정의 구조화를 주장했고, 학습방법에서는 발견학습이나 탐구 학습을 주장했다. 사회과는 과학과와 함께 이러한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는데 교육과정의 구조화는 197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주었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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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학문의 교육을 중시(본질주의 교육의 득세)**
스푸트니크 쇼크는 기초 학문의 교육을 중요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까지 미국교육을 장악하고 있던 진보주의 교육이 막을 내리고 본질주의 교육이 득세하게 된 것이다. 진보주의 교육은 학습자의 창의성과 흥미를 중요시하는 교육이었는데, 학습에는 흥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진보주의 교육자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기초학문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학습자의 흥미나 관심은 기초학문을 배우는 동안에는 유보되어야 한다는 본질주의 교육에 힘을 싣게 된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초·중등학교의 교육과정에서 기초학문(셈하기와 같은), 특히 수학이나 과학 분야의 기초학문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또한 교사의 권위를 높이고 훈육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공립학교보다 사립학교에서 더욱 강조되었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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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철학의 변경**
창의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진보주의 교육에서 기초학문의 교육을 우선시하는 본질주의 교육으로 변화한다. 이는 해방 후 미국 교육계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던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진화론과도 약간의 인연이 있다. 이 대규모의 교육 정책의 변화로 과학 교육의 중요도가 커지면서, 생물학 교과서에 진화론이 제대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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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주의 학파의 등장**
이 스푸트니크 쇼크는 미국 교육에 대한 비난 및 자성을 불러 일으켰으며, 지금까지 환영받던 진보주의자들 대신에 본질주의학파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상 자성 수준이 아니라 그간의 패러다임이 싹 물갈이 당했다. 그리하여 등장한 것이 학문중심 교육과정. 1959년 9월 미국에서 우즈홀 회의가 열리며 기존 교육계에 대한 반성 및 대안을 위한 계획이 시작되었는데 여기서 기존의 교육학자(교사 진보주의 교육학자)들은 찍소리도 못하거나 아예 초청받지도 못했었다.
어느 정도였느냐하면 우즈홀 회의에는 총 34명의 학자들이 모였는데, 그 34명 중 교육학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게 교육학자들이 만든 교육 때문인데, 어디서 교육학자가 끼냐는 것이 당시의 논리. 교육학자들은 나름대로 항변을 해봤지만, 여론은 냉담하기 그지없었고 몇몇 이들은 아예 소련의 스파이가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만큼 미국 교육계에 준 쇼크가 대단했다. 이를 스푸트니크 쇼크라고 한다.(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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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구조론을 떠올리게 하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내용은
◎ 교육의 개념과 법칙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 교육과정의 내용을 사실, 개념, 법칙 등 지식의 구조를 따라 조직해야 한다.
◎ 교육과정의 구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 생물학 교과서에 진화론이 제대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때까지 미국교육은 진화론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말인가? 이거야말로 쇼크다. 진화론을 배우지 않는다면 소련에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과학과 비과학이 싸우면 당연히 과학이 이긴다. 이는 근본적인 사유의 틀을 규정하는 것이다.
60년 세월이 흘렀다.지금 제 2의 스푸트니크 쇼크가 필요하다. 조만간 유럽경제가 몰락하고 중국이 급부상한다. 서구는 스푸트니크 찜쪄먹는 공자쇼크를 받는다. 공자쇼크는 교육쇼크다. 진짜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중국에 가서 공부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된 개념과 법칙 중심 지식의 구조를 따라 교육내용이 조직되어야 한다는 본질주의 교육의 주장은 과연 실제로 반영되었는가? 한국의 교과서는 지식의 구조에 맞게 제작되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필자는 초중고 12년 동안 소실점 이론을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없다.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근법, 명암법들이다. 그런데 말이다. 미술교과서 어디에도 그림그리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없더라. 그냥 유명한 그림을 몇 보여줄 뿐이다.
그런 그림은 내가 길거리를 30분 돌아다니면 볼 수 있는 것이다. 미술교과서를 공부하느니 그냥 길을 5분 걸으면 된다. 이미 교과서 백 배의 내용을 배웠다. 한국의 미술교육에 사실, 개념, 법칙 등 지식의 구조는 없다.
다른 분야는 다른가? 역사학은 쓰레기에 가깝다. 국사든 세계사든 그걸로 애들 가르친다는게 말이 되나? 장난하나? 환빠나 생산할 뿐이다. 역사학자라는 자들이 참 초딩도 아니고 패버리고 싶다. 역사의 구조? 없다. 역사의 사실, 개념, 법칙 없다.
철학? 아예 없다. 안 가르친다. 미학? 없다. 그런 이름의 학문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안에 미학을 아는 자가 0명 있다.
국어? 처음부터 작문을 하라고 한다. 언어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국어교과서 어디에도 언어란 무엇인가? 문장이 전제와 진술, 주어와 술어, 명사와 동사로 조직되는 점을 교육하지 않는다. 언어가 처음 어떻게 발생되었는지 교육하지 않는다.
언어는 소통의 수단이다. 언어를 알고자 한다면 먼저 소통을 알아야 하는데, 소통을 모르므로 장차 언어를 가르치게 될 가능성도 없다. ‘정의란 무엇인가?’ - 이런 쓰레기 책이 팔리는 이유는 한국인 중에 ‘정의’라는 단어의 뜻을 아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정의는 사건 안에서 기능하므로 사건을 모르고 정의를 알 수는 없다.
초딩한테 글짓기를 하라는 것은 인터넷 게임 한번 시켜주고 앱 하나 만들어와라고 시키는 깡패짓이다. 글짓기를 가르칠수록 거짓말 실력만 늘어난다. 신경숙 된다.
초중고 12년 동안 시詩가 무엇인지 말해주는 교사는 없었다. 나의 결론은 ‘모른다’는 것이다. 교사 중에 시가 무엇인지 아는 교사가 없다. 알아야 가르치지. 만약 문학이 무엇인지 아는 교사가 한국에 한 명 있었다면 신경숙 괴물은 탄생하지 않았다.
미술시간에 반드시 배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지식은 형태다. 우리 나라 화가 중에 형태를 아는 화가 한 명 있을까? 없다. 그럴 리가 없잖아. 형태를 이해하려면 공간과 시간을 이해해야 하는데 공간과 시간을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일본만화가 상당히 발달했는데도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미국 코믹스에 밀리는 이유는 일본만화에 형태가 없기 때문이다. 공간의 밀도 곧 에너지를 담아내야 형태다. 만화가들이 쓰는 화가 났다는 기호표시를 하면 형태가 아니다. 에너지의 쏠림을 반영하지 않으면 일본 애니는 절대 미국 애니를 이길 수 없다.
주인공이 화가 난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머리 주변에 ‘=33’ - 이런 표시 하면 만화가 아니다. 패죽여야 한다. 그걸 극복하는게 지식이다. 왜 학교를 다니냐? 그런 바보짓 하지 말라고 다니게 하는 거다.
무엇인가? 본질주의 교육학자들이 주장하는 지식의 구조에 따른 교육과정의 조직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 교육이 망했을까? 잘못된 낭만적, 감상적 진보주의 교육학자들 때문이다. 그들은 지식의 본질을 모른다. 무식하다.
한국인들은 그래도 감으로 알고 있다. 희미하게나마 공자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공자의 세례를 받지 않은 서구인들은 조만간 공자쇼크를 당한다. 그들의 교육은 가짜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교육도 가짜지만 유교의 영향에 의해 느낌으로 전해지는 것이 있다. 공자미학이다.
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팀플레이가 되느냐다. 공자는 이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교육의 진짜 목적은 사회의 구조를 건설해 가는데 있다. 사실, 개념, 법칙을 따라 지식의 구조가 조직되어야 하듯이 마찬가지로 미학, 포지션, 권리에 따라 사회의 구조가 조직되어야 한다.
미학은 수준이다. 사실을 엮어 개념을 이루고 개념을 조직하여 법칙을 얻듯이 수준에 맞게 상사와 부하로 포지션이 부여되고 거기서 권세가 작동하면 비로소 팀플레이가 된다. 교육은 사회에 그러한 구조를 건설하는 것이다.
교육은 개인의 두뇌에 뭔가를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사회 그 자체를 밑바닥에서부터 건설해 가는 건축작업이다.중국의 교육은 농부가 밭을 갈아 경작하듯이 점차 세가 불어나는 다다익선법이고, 서구의 교육은 부족민이 나무껍질을 벗겨 굼뱅이를 채집하듯이 하는 채집법이다.
서구 교육의 폐해는 지금 EU의 몰락으로 확인되고 있다.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팀을 건설해가는 것이 가르치는 것이다.
독일 애들은 성공하는 로켓을 그때 미국 애들은 왜 못했을까? 그들은 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르만의 종사제도는 기사와 종자가 친하다. 대학교수와 막노동자가 친한게 독일이다. 일본도 비슷하게 의원과 보좌관이 친하다. 의원이 잘못하면 보좌관이 대신 자살한다. 봉건영주가 실수하면 모시는 가신이 자살한다.
독일과 일본은 팀이 있다. 원래 그게 된다. 2천년 전부터 그랬다. 돈키호테와 산초판사가 친하다. 60년대 이후 미국이 독일 애들 데리고 성공한 우주계획을 소련은 왜 망쳤을까? 팀이 깨졌기 때문이다. 흐루쇼프가 짤린 이후 소련 과학자들은 내분을 일으켜 이후 줄줄이 로켓이 자빠졌다. 그들은 팀이 약했다.
스푸트니크 1호는 천재과학자가 거의 혼자 한 것이고 이후 미국과 본격경쟁 들어가면서 팀 대 팀으로 대결하자 소련이 완패했다.
유교주의 세례를 받은 한국은 팀이 강하다. 단 일본식 팀과 차이가 있다. 한국은 보좌관이 의원을 대신해 자살한 예가 없다. 대신 리더가 부하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살한 예는 있다. 한국인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도 고향과 나이와 출신학교를 물어보고 5분 안에 팀을 만든다. 유교교육의 힘이다.
공자의 아홉가지 기준을 들이대면 팀의 일원이 될지 안될지 3분 안에 판명된다. 그러나 유럽은 기독교와 회교가 2천년째 반목 중이다. 일본인은 한국인이 분열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수직적으로 팀을 만들 뿐이다.
수평적으로는 팀이 성립되지 않으므로 아직도 야꾸자를 해결 못한다. 후쿠시마가 터져도 총리와 도쿄전력 사장이 관할을 따지며 책임을 미룬다. 이차대전 때는 해군과 육군이 분열되어 있었다.
물론 일본처럼 수직적으로도 팀을 만들고 한국처럼 수평적으로도 팀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팀을 만드는 것이 교육의 백퍼센트다.
EU의 위기는 간단하다. 앨 고어의 노벨상 사기 옥수수 기름으로 전환 식량값 폭등 아프리카와 아랍 기근 리비아, 튀니지, 이라크, 시리아, 이집트 몰락 아프리카, 아랍과 단절 푸틴 도발 러시아도 단절 = 지금 EU는 착취해먹을 배후지를 잃고 전방위로 고립된 것이다.
앨 고어가 노벨상을 위해 유럽을 망쳤다. 그러나 EU는 아직도 자기들이 왜 망했는지 모른다. 그들은 교육을 잘못받은 것이다. 그들은 지식인이 아니라 무식인이다. 물론 앨 고어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팀보다 개인을 중시하는게 문제다. 인류가 하나의 팀이라는 개념이 그들의 머리 속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