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관 비판은 식민사관이다.

제목에 낚이면 안 된다. 낚이라고 써놓은 제목에 낚이면 내가 무슨 어부 베드로냐고? 전통적인 식민사관은 윤치호 등 친일파들의 민족개조론인데 도산 안창호를 비롯한 지사들 중에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생각 자체는 자연스럽다. 민족도 개조할 때는 개조해야 한다.

업그레이드 된 신식민사관은 일명 ‘민족사관’이라는 건데,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세운 최명재가 역겨운 친일파인 것만 봐도 본질을 알 수 있다. 이 자는 걸핏하면 학생들 모아놓고 일제강점기 때 자신을 가르친 왜놈선생의 은혜 운운하며 눈물 짜는 자다. 뼛속까지 친일파라 볼 수 있다.

‘민족사관고’라는 것이 일본의 ‘마쓰시다 정경숙’을 표절했는데, 하는 짓이 딱 신경숙이다. 민족타령하는게 어떤 민족은 우월하고 어떤 민족은 열등하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열등한 한민족을 개량하여 우등민족으로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건데 이게 전형적인 인종주의 식민사관이다.

한국인의 인종개량을 일본인에게 맡기면 친일파, 한국인이 스스로의 힘으로 하면 민족주의라는 건데 가소로운 궤변이다. 인종주의가 식민사관이다. 세계사 차원에서 ‘인류문명의 이동’이라는 미학적 관점, 일원론적 관점을 획득하지 않으면 어떻든 식민사관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환빠 = 신식민사관이라고 보면 된다. 환단고기 운운 하는 자들이 대개 러시아는 음흉하고, 청국은 미욱하고, 일본은 얍삽하니, 조선은 잠시 얍삽한 일본에 맡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한 빌어먹을 강증산 찌거기들이 아닌가. 전통적인 식민사관과 다른 점은 정신승리법을 주장하는 것이다.

민족사관파가 일본 따라배우기 하는 민족개조론자라면, 환빠파는 일본땅도 우리땅이라고 우기는 팩트개조론자다. 민족을 개조하려니 비용과 시간이 들고, 역사책을 날조하는건 ‘참 쉽죠잉.’

그리스의 몰락은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배 타고 항해하던 시절에는 지중해의 고요한 바다야말로 가장 빠른 통신수단이었다. 그러나 더 빠른 말이 등장하고 자동차가 등장하고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에게해는 도리어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었다. 게다가 사방이 산으로 막혔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의사결정을 잘하려는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고립되면 물리적으로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다. 스스로 중앙이 아닌 변방이라고 생각하면 의사결정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 이념적으로 격리되거나 문화적으로 고립되어도 의사결정은 불능이다. 미학에서 앞서야 한다.

미학은 토대의 공유다. 나와 타자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해내고, 운명적으로 엮여있음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근거로 삼아 의견일치를 이루어가는 능력이다. 차별에 능하면 망하고 평등에 능하면 흥한다. 단 차별주의자는 차별해야 한다. 너와 내가 하나의 시소에 올라탄 공동운명체다.

그 시소의 축을 움직여 밸런스를 회복하는 능력이 미학이다. 성공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힘을 합치면 된다. 보통은 이쪽을 합치면 저쪽이 떨어져 나간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토대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것이 미학이다. 너와 내가 공유하는 것을 살찌우면 누구도 화내지 않는다.

복면가왕이 승자와 패자를 가려도 성내는 사람이 없는 이유는 공정하게 평가하는 룰이 신뢰를 얻게 되어 마치 고속도로를 새로 뚫은 것처럼 피해자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경상도와 전라도 중의 어디에 철도를 놓아도 누군가는 화를 낸다. 다만 철도가 광주와 대구를 연결한다면?

미학은 승자와 패자를 나누고, 선과 악을 구분하고, 참과 거짓을 가려내지만 누구도 화내지 않는다. 그것은 서로 간에 공유되는 공동자산이기 때문이다. 사유지에다 골프장을 지으면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리지만 공유지인 국립공원을 잘 관리하면 모두가 좋아한다. 그것이 미학이다.

역사의 올바른 판단은 미학 뿐이다. 서구에 기사도가 있다면 일본에 무사도가 있다. 조선에 선비정신이 있다. 찾아보면 어느 나라든 비슷한 것이 하나씩 있다. 이런건 자랑해도 누가 시비하지 않는다. 미학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에 강해야 진정으로 강한 집단이다.

한국, 일본, 중국, 조선족, 다문화, 이런걸 분별하는 심리는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자신을 약자로 규정하고 피해의식에 빠져 있으며 자신이 주도하여 의사결정할 자신감이 없으니 얼굴을 파묻고 구석에 숨어든다. 누가 결정하면 강하게 반대할 궁리만 한다.

![](/files/attach/images/199/157/605/DSC01488.JPG) 

우리의 역사는 과연 자랑스러운 역사입니까? 그런데 왜 남에게 자랑하려고 하죠? 혼자 있으니 불안하고, 다른 사람과 팀을 편성해야 하는데, 먼저 다가가서 말을 붙이려니까 자랑할 것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죠. 자랑하려 한다는 것은 내가 궁해서 타인에게 말을 거는 입장이 되어 있는 겁니다. 이미 지고 들어가는 거.피라밋이 크다고 자랑할게 아니고, 만리장성이 길다고 자랑할게 아니고, 사무라이가 칼 좀 쓴다고 자랑할게 아닙니다. 자랑하려는 태도 자체가초조한 겁니다.자랑거리를 필요로 하는 사실 자체로 태연하지 않습니다. 호연지기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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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5-07-0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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