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너의 말이다.” 예수의 강력한 말이다. 사람들은 타인을 비판하지만 대개 역설적인 자기소개가 된다. 언어에 관점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창을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지를 들키고 만다.

우리는 밖을 보고 있지만 사실은 안을 보고 있다. 당신이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든 그것은 실로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나 하고 묻는 사람이 있다. 빅뱅 이전은 없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공간도 없다.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말해주면 또 묻는다. ‘그런데요? 빅뱅 이전에 아무 것도 없을 때는 어쨌나요?’ 속 터지는 무한루프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빅뱅 이전은 없다. 없다고. 빅뱅 이전에 ‘무슨 일’이 없는게 아니고 시간 자체가 없다. 시간이라는 단어를 거기에 가져다 붙이지 말라. 우주는 사방으로 균일하다. 어느 쪽을 바라보든 관측되는 별들의 밀도는 비슷하다. 왜일까?

우리는 우주의 중심에서 바깥을 본다고 여기지만 우주의 중심은 없다. 우주의 가장자리도 없다. 우주 바깥은 없다. 왜?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느 쪽을 보든 우주의 중심을 보는 것이다. 같은 쪽을 보는 셈이 된다.

우리는 우주가 손바닥을 펼쳤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주먹을 쥐었다. 어느 쪽을 보든 우주의 중심을 본다.

손바닥을 펼치면 손가락은 바깥을 향한다. 주먹을 쥐면 손가락은 중심을 향한다. 우주는 주먹을 쥐고 있지만 우리의 관측에는 우주가 손바닥을 편 것으로 보인다. 로켓을 타고 우주의 어디로 가든 계속 가면 중심에 이른다. 실로 우주는 중심도 없고가장자리도 없다. 결과적으로 없는게 아니라 원리적으로 없다.

예수는 가야바에게 말했다. 그것은 너의 말이라고. 가야바는 예수를 바라보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자신의 창문을 전시하고 있다. 자기 관점을 발표하고 있다. ‘너는 하느님의 아들이냐?’ 호적등본 떼 볼 기세다.

예수를 추궁하지만 실제로는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다.’는 자기고백이 된다. 구조론에서 하지 말라는 자기소개다. 하느님에 대한 배신이다. 가야바는 배신했다.

우주의 바깥은 없다. 시공간을 절대로 놓는 뉴턴모형과 시공간을 상대로 놓는 아인슈타인 모형이 있다. 둘 다 우주의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바깥은 없으므로 바깥을 바라볼 수 없다.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 바깥으로 팽창하는게 아니라 사실은 풍선처럼 안으로 부풀어 오른다.

구조론 모형은 언제라도 밖에서 안을 본다. 가야바는 말한다. ‘너는 하느님의 아들이냐?’ 예수는 말한다. ‘그럼 니가 하느님 아들을 해보던지!’ 각자의 언어가 있다. 호적에 올라야 아들이라고 믿는다. 이는 가야바의 언어다.

아들로 행동하는 자가 아들이라고 믿는다. 이는 예수의 언어다. 하긴 친자식이라 해봤자 0.1그램의 무게도 안 되는 유전자 중에서도 0.00001퍼센트 미만의 미세한 차이가 아니겠는가?

◎ 뉴턴.. 시공간은 모눈종이처럼 펼쳐져 있다.

◎ 아인슈타인.. 시공간은 거미줄처럼 휘어져 있다.

◎ 구조론.. 우주의 시공간은 원리적으로 없다.

우주는 중심도 없고 주변도 없다. 빅뱅 당시에 점이었기 때문이다. 거리는 서로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오른손과 왼손이 떨어져 있다고 믿지만 뇌로 보면 같다. 오른손과 왼손을 맞잡으면 거리는 0이 된다. 우주공간에 직선은 없다. 빠른 길이 직선인 것이다. 예수의 언어를 이해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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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5-09-09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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