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은 세상을 ‘일’로 본다. 일을 잘 하면 된다. 일은 의사결정의 연결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계속하면 된다. 쉽다. 문제는 서로 연동된다는 거다. 이 일이 저 일에 영향을 미치므로 방향과 순서를 잘 판단해야 한다.
일은 실과 같아서 엉키는 수 있고, 꼬이는 수 있다. 답은 자의적인 인간의 의도나 목적을 앞세우지 말고, 순수하게 일 자체의 결을 따르는 것이다. 우선순위 1번을 먼저 하기다. 큰 일을 먼저 하고 작은 일을 나중해야 한다.
쉽지 않다. 혼자 하기는 쉬운데 함께 하기가 어렵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지만 맞들다가 스텝이 꼬인다. 서로 손발을 맞추는데 시간이 걸리므로 차라리 혼자 하는게 나을 때가 많다. 해결책은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다.
의사결정 매뉴얼을 만들어놓은 것이 유교다. 장유유서 매뉴얼 있다. 형님먼저 선배먼저, 부모먼저로 서열이 정해져 있다. 의사결정이 쉬워진다. 지금 한중일이 잘 나가는 이유다. 그러나 너무 매뉴얼에 집착해도 곤란하다.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매뉴얼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이 시대에 ‘남자먼저’로 계속 밀다가는 망한다. 2500년 묵은 낡은 매뉴얼이다. 어린이 먼저, 노약자 먼저로 바꿔줘야 한다. 매뉴얼의 단점도 분명히 알아둬야 한다.
매뉴얼은 다수가 한 명의 천재에게 묻어가는 전략이므로 새로운 창의를 방해한다. 성공한 천재를 따르는데만 골몰하고 새로운 천재를 만들어내는데는 소홀하다. 매뉴얼은 후진국을 단번에 중진국수준까지 끌어올린다.
그 이상 올라가려면 또다른 도전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일단 매뉴얼의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는 거다. 왜냐하면 매뉴얼이 없는 자연상태도 사실은 매뉴얼이 있기 때문이다. 부족민 사회에는 부족민 매뉴얼이 있다.
우리는 유교의 권위주의 매뉴얼을 비판하지만, 부족민의 의사결정 매뉴얼은 더 끔찍하다. 모든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새로 일을 벌이지 못하게 막는다. 아무 것도 못하게 해서 아무런 일도 없이 평화가 유지되도록 한다.
◎ 부족민 매뉴얼 – 생존전략으로 일을 벌이지 못하게 막는다.
◎ 문명인 매뉴얼 – 세력전략으로 일을 벌여서 문제를 해결한다.
아랍사회가 낙후한 것은 이유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아랍사회에서 보는 의사결정의 난맥상은 중세 기독교사회의 매뉴얼이었다. 중세 기독교 사회는 내일이나 모레쯤 예수님이 재림할 것이므로 돈을 벌거나 하면 안된다.
기독교문명권이 좋아진 것은 종교개혁 덕분이다. 최초의 종교개혁은 바로 마호멧교의 등장이다. 중세기독교의 암담한 현실을 보다 못해 간소화 한 것이다. 그리하여 아랍은 크게 발전했다. 문제는 바꾸지 않았다는 거다.
1500년 지난 낡은 매뉴얼을 아직까지 쓰다보니 이슬람사회가 뒤떨어진 것이다. 알아야 할 사실은 모든 의사결정 매뉴얼은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거다. 유교도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약간 나을 뿐이다.
인류는 크로마뇽인으로 데뷔한 이후 10만년 동안 부족민으로 살아왔다. 한 명의 똑똑한 사람이 새로운 일을 벌이면 재앙이 닥쳐서 부족사회가 붕괴한다. 누가 처음 창을 발명한 이후 끔찍한 살인이 도처에서 자행되었다.
누가 활을 발명하자 전쟁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다. 그러므로 모든 부족사회의 의사결정매뉴얼은 이런 혁명적 변화가 나타나지 않도록 방해하는데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점을 쳐도 변화의 괘를 불길한 운수로 본다.
게르만족이 강한 이유는 종사제도 매뉴얼과 길드 매뉴얼, 도제매뉴얼 덕분이다. 산초가 돈키호테를 따라나서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원래 그런거 잘 안 된다. 산초 친구가 찾아와서 ‘야 너 바보냐?’ 하고 놀리는 수 있다.
흥분한 산초는 곧 돈키호테를 때려죽이고 로시난테를 빼앗는다. 그래야 친구들 사이에서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산초가 돈키호테를 따라나선건 돈키호테가 공주와 결혼하여 성을 차지하면 기사로 출세할 야심 때문이다.
이게 쉬워 보이지만 원래 잘 안 된다. 적어도 3년은 편력여행을 해야 하는데 무려 3년? 3년이라고라? 3년 앞을 계획한다는 것은 어렵다. 일주일도 못 기다린다. 수백년간의 닦아온 전통이 있기 때문에 그게 가능한 거다.
왜 이게 될까?고약한 형님 밑에서 10년 정도 갈굼질을 당하면 된다. 부족민은 형제개념이 없으므로 10년간 갈굼을 당한 적이 없어서 3년여행의 거대한 계획을 못 세운다. 우리에게 쉬운 것이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것은 집단의 평판공격이다. 부족민은 조금이라도 돈을 벌면 ‘가오세우기’에 치중한다. ‘가오세우기’라면 중국 부호들의 호화결혼식이 유명하다. 수십 대의 외제차 행렬로 도로를 메우는게 이유가 있다.
사치와 낭비를 일삼아야 명성을 떨치고 평판이 높아져서 사업이 잘 풀린다. 아랍의 부호들은 ‘부르즈 칼리파’를 비롯하여 빌딩층수 경쟁을 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짓기 병에 걸려서 나라경제를 거덜내고 있다.
필리핀에도 그런 문화가 있다. 마닐라 시내에는몇십년씩 짓고 있는 빌딩이 있는데 아직 완공이 안 되었다. 경쟁자가 더 높은 빌딩을 세우기 때문에 돈을 빌려서라도 공사를 계속한다. 이런 식으로는 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
일본은 봉건영주들의 길싸움 경쟁이 유명하다.봉건영주들이 한 해 걸러 도쿄에 인질살이를 하는데 행차가 요란하다. 모르고 도쿠가와 막부의 친척과 마주치면 길싸움이 일어난다. 상대방 가마행렬이 비키라고 요구한다.
막부의 친척은 가난하므로 하인이 없어 괄시를 당하고 옆길로 숨는다. 다음날 도쿠가와 형님에게 일러바친다. 아무개 시골의 촌놈영주가 수백 명의 하인들 거느리고 감히 왕족을 괄시했다고 고자질한다. 목들이 달아난다.
한국 TV의 사극에서는 선비들이 혼자 산길을 걸어간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인들이 따라붙어야 한다. 마이클잭슨이 40여명을 데리고 다니는게 이유가 있다. 농민들이 낯 모르는 선비를 발견하면 잡아다 모욕을 준다.
‘야 너 일루와봐. 너 뭐야? 어디서 왔어? 대가리 박아.’ 몰매 주고 망신주고 야료 부리고 하는건 다반사다. 이웃마을에 쉽게 못 간다. 이걸 원님에게 일러바쳤다가는 더 망신당하는 거다. 소문이 나면 창피를 더할 뿐이다.
김삿갓 정도 되어야 한다. 문제는 그 위세의 구조가 상당히 복잡하다는 거다. 족장은 마을 전체주민의 이목을 끄는 생쇼행동을 끊임없이 반복해야한다.단순한 강자가 억압이 아니라 내밀하게 작동하는 구조의 원리가 있다.
조폭들의 경조사에 병풍치기를 떠올릴 수 있다. 검은 옷을 입은 깍두기들을 길 양쪽으로 도열시킨다. 단순한 세과시가 아니다. 경쟁자를 기죽이자는게 아니라 그 이상의 심오한 의미가 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문제는 좋은 평판을 받기 위해서 부족사회에 좋은 일을 해야하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가장 높은 신분은 신神이다.신의 주특기는 느닷없이 벼락치기다. 신이 위엄있는 이유는 벼락을 내리는데는 사전예고가 없기 때문이다.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나쁜 일을 한 사람에게 벌을 주면? 난 착한 일 했으니 보스가 챙겨주겠지 하고 교만해진다.기어오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스는 착한 일을 하면 벌주고 나쁜 일을 하면 상을 줘야 한다.
벼락은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안가리고 예고없이 떨어지는게 매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신神의 가오가 선다.그래야 집단의 구성원 모두가 긴장하고 보스의 눈치를 본다. 후진국은 부패로 망하는게 아니다. 종교로 망한다.
족장마인드가 되면 제정일치사회가 되는데 제정일치 사회의 통치술은 느닷없이 누군가를 후려패는데 있다. 조폭의 종교행동 역시 느닷없이 주먹질하기다. 조폭의 행동을 일종의 종교행사로 봐야 제대로 이해가 가능하다.
느닷없이 죄없는 사람을 죽도록 패버려야 보스의 가오가 선다. 무엇인가? 부족민 사회의 족장이나 유력자는 경제와 정치와 종교를 겸하는데 그러므로 일을 해서 조금이라도 돈을 벌면 하인을 거느려서 가오를 세워줘야 한다.
느닷없는 행동으로 부족 전체를 고도의 긴장상태로 끌고가야 존중받는다. 가끔가다 한 번씩 지랄발광을 해서 부족사회에 공포의 도가니를 연출해줘야 한다. 연산군이 잘 하는 그런거 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필연이다.
족장이 평화롭게 마을을 이끌면 살해당한다. 미친 넘이 칼들고 와서 존경하는 우리 족장이 신인지 아닌지 찔러보자며 테스트한다. 나쁜 족장이 우대를 받는다. 피가 마르도록 부족에 고도의 긴장을 조성해야 종교느낌 와준다.
검문은 불시검문이 좋고, 감찰은 기습감찰이 좋다. 느닷없이 뒤통수를 쳐야 신으로 대접받는다. 모든 것은 마을에서 가장 지능이 떨어지는 자의 기준에다 맞춰진다. 그들이 소문을 내고 돌아다니며 평판을 만들기 때문이다.
기행을 하고 해괴한 짓을 해야 한다. 그게 이야깃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부족민 전체의 주목할 거리를 끊임없이 생산해야 한다. 이런 미친 짓으로 경쟁 들어가면 망하는 거다. 폭군 네로황제의 끊임없는 해프닝처럼 말이다.
석숭石崇은 서진西晉시대 부호였다. 높이 3∼4척이 넘는 산호수가 6∼7개가 넘는 등 진귀한 보물이 그의 집 곳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석숭의 축재를 방임하고 부채질한 것은 임금이었다. 서진을 창건한 무제武帝는 등극 후 스스로 사치와 방종에 빠져들어 1만명의 후궁을 두었다. 무제의 외삼촌에 왕개王愷도 당대의 부자였다. 무제는 석숭과 왕개의 재산경쟁을 부추겼다. 한번은 왕개에게 커다란 산호수를 하사했다. 석숭을 눌러 이기라면서…. 석숭은 무엄하게도 왕개가 자랑하는 산호수를 박살내 버렸다. 자신의 산호수를 모조리 꺼내놓고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걸 골라 가지라며 기염을 토했다. 왕개는 맥아당으로 그릇을 씻었다. 석숭은 뒤질세라 밀랍을 땔감으로 하여 음식을 만들었다. 왕개가 자색비단으로 40리를 둘러칠 수 있는 장막을 만들자 석숭은 훨씬 비싼 비단으로 50리짜리를 만들었다. 석숭이 향료의 열매로 벽을 바르자 왕개는 피륙의 물감으로 담장을 칠했다. 주연에서 피리를 부는 여자를 곡조가 틀렸다하여 죽이고 손님이 술을 사양하게끔 잘못 권했다하여 시중드는 여인을 박살내는 등 세습호족들의 방종은 끝이 없었다. (웹검색)
석숭의 집 화장실이 너무 화려해서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이 감히 화장실를 쓰지 못하고 문전에서 서성대며 똥을 참았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임금이 이것을 조장한다는게 문제다. 떠들썩한 이벤트를 열어야 국가가 작동한다.
소문이 전파되고 언론이 만들어지고 임금의 존재감이 부각된다. 그렇다. 부족민 사회의 보스는 제정일치 사회이므로 경제와 정치와 종교를 겸해야 하는데 이게 참 골때리는 사무라서 눈치가 9단이어야 겨우 해낼 수가 있다.
그래서 망한다. 망하기 때문에 평화가 유지된다. 누가 출세해서 크게 돈 벌어서 큰 집을 지어녹고 떵떵거리면 마을에 불온한 공기가 감돌고 적당이 출현하고 폭력사건이 일어난다. 조용한 마을에 끔찍한 재앙이 닥치는 거다.
여러분이 아프리카 어느 마을의 족장이 되었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박근혜식 새마을운동을 하면 사람들이 신이 나서 도와줄까? 천만에. 그 사회는 종교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도덕을 세트로 공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폭력을 일삼는 악질 리더, 변덕 잘 부리는 싸이코 리더, 인간차별 잘 하는 나쁜 리더가 주름잡는 최악의 막장사태로 간다. 우리나라 정치판이 혼미한 이유는 사람들이 이런 문제가 원래 어렵다는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통합 쉽잖아. 통합하면 되잖아. 천만에. 누군가를 죽여야 권위가 서고 사람들이 말을 듣기 시작한다. 지도자가 A를 가리키면 아무도 그 방향을 알아채지 못한다. 반대쪽 B를 매우 패면 대칭원리를 작동시켜 A를 알아챈다.
인류의 수준은 10만년동안 정체를 면치 못했던 크로마뇽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몇 넘이 똑똑한 것이고 다수는 무지하다. 위태롭다는 말이다. 인간의 본능은 상당부분 사회의 진보가 아닌 보수에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환경변화가 일어나면 생존전략에서 세력전략으로 변하고 위대한 진보가 시작된다. 우리는 진보한 문명에 중독되어 본래의 모습을 잊어버렸다. 선이 악을 이기는 모습만 알고 악이 선을 이기는 이면을 보지 못한다.
아프리카를 비롯하여 낙후한 국가들의 공통점은 의사결정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점입니다.경제인은 경제만 해야 하는데 정치를 하고 종교까지 겸합니다. 제정일치사회를 넘어 제정경일치인 거죠. 그래서 망합니다. 재벌이 정치를 넘보고, 정치가 종교를 넘보면 망하는건 당연한 일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사업을 키우면 되는데 곧 지역사회의 거물이 되려고 하는 거죠. 만약 지역거물 노릇을 하지 않으면 다양한 형태로 공격이 들어옵니다. 그 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다는 거죠. 한국 역시 정치와 종교, 역사, 철학 등 인문학 분야가 받쳐주므로 이 정도 된 것입니다. 졸부들의 사치, 낭비가 단순한 허영심 때문만은 아닙니다. 인간의 원초적인 종교적 본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신이 되려고 하는 거죠. 제정경일치는 멸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