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와 숙제는 옛날의 어진 사람이다. 어진 것을 구하여 어진 것을 얻었으니 또 무엇을 원망했겠는가.”

과거에 운동권 백이숙제를 비난하고 박정희 주무왕을 찬양하는 풍조가 있었다. 교과서에 이와 관련한 내용이 있었는데, 교사는 백이숙제를 두고 현실을 모르는 꽁생원으로 비판하도록 학생들을 유도했다. 나는 크게 분개하여 가슴에 맺힌 것이 있었고 오래도록 이 주제를 생각했다. 한 동안 가슴 한 켠이 아팠다. 수년동안 생각해서 내린 내 결론은 이렇다. 선善은 선에 이름으로써 이미 보상받았고, 악惡은 악에 이름으로써 이미 징벌받았다. 고흐는 그림을 얻어서 행복했고, 소로은 호숫가에 있어서 즐거웠고, 백이숙제는 어짐을 얻어서 행복했다. 고흐를 동정하거나 백이숙제를 비난한다면 박제가 된 천재 이상이 비웃는다. 인간의 큰 기쁨은 우주에 답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확인하는데 있지 구태여 그것을 내게로 가져와 사람들 앞에 전시하고 인정받는데 있지 아니하다. 고흐의 그림이 팔리지 않았거나, 소로의 책이 팔리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들은 승리자다. 패배한 쪽은 세상이다. 내가 이기면 되는 거다. 좋은 것을 내가 찾아냈는데 세상이 가져가지 않으면 그들이 진 거다. 좋은 것을 독점하지 남주겠는가? 귀한 어짐을 백이숙제가 독점하지 남주겠는가? 한창 사유에 빠져있던 시절 나를 가장 강력하게 끌어당긴 주제 중의 하나다.

예전에는 주책바가지 영감이 따분한 소리나 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다시 보고 공자의 사유가 상당히 구조론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오늘부터 논어 중에서 각별히 필이 오는 대목만 골라서 하루에 한구절씩 해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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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6-01-2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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