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든, 음양이든, 좌우든, 진보와 보수든 모든 분열적 형태의 수평적 대립은 안전한 수직적 구조의 그릇에 담아내야 한다. 수평적 대립을 강조하는 이원론의 언어를 만나면 불안감을 느껴야 한다. 남녀라고 대립된 어휘를 써놓고 편안한 사람은 문제가 있다. 왜 ‘남’이 앞에 오고 ‘여’가 뒤에 붙느냐는 항의의 시선에 뒤통수가 따가워야 정상이다. 수평적 대립은 위태롭다. 안전하게 담아낼 수직의 그릇이 필요하다. 언어감각으로 느껴야 한다. 일원론의 수직적 구조를 찾을때까지 사유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깨달음이다. [생각의 정석 102회]
수평적 대립에서 더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호남과 영남의 남인들이다. 그들은 섬처럼 고립되어 있으므로 관동과 관서로 분열되어 더 안전하다는 일본인들처럼,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로 분열되어 더 안전하다는 영국인들처럼, 호남과 영남의 분열에서 도리어 안도감을 느낀다. 공격할 때는 분열된 둘이 내부경쟁을 벌여서 더 강해지고, 수비할 때는 둘을 가르는 경계선이 자연 방어선이 되므로 안전하다는 논리다. 이것이 보수꼴통의 생각이다. 확실히 그런 점이 있다. 중앙집권은 위태롭고 지방자치가 발달해야 한다. 이 논리는 고립된 변방에 잘 들어맞는다. 중앙은 항상 외부로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므로 통합되어야 강해진다. 일본도 메이지 시대에 통합되어 강해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다시 본래의 분열주의로 돌아가버렸기 때문에 잘 나가다가 주저앉았다. 우리는 일본이 아니다. 섬이 아니다.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역할을 딱 구분해 두어야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확실히 그런 점이 있습니다. 남자는 외벌이라 돈 버느라 정신없고, 여자는 자식 키우느라 정신없으니 가정이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 특히 후진국일수록 그렇습니다. 그런데 외벌이는 맞벌이를 이길 수 없습니다. 결국 패배합니다. 아랍이나 인도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성차별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으로 ‘의사결정의 편리함’을 추구하다가는 경쟁에 패배하여 남의 밑에서 종살이를 하게 됩니다. 선진국처럼 여자와 남자가 하나의 사무실에서 자유롭게 어울리면서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좋은 결혼을 하는게 정답입니다. 후진국 사람들이 중매결혼을 하니까 맞벌이가 겁나는 거지요. 인간은어려운 의사결정에 도전하기보다는 차라리 몸으로 때우는게 낫다고 여기는 동물입니다. 그게 비겁한 것입니다. 용기있게 어려운 의사결정에 도전하는 것이 글자 아는 사람의 정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