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라.
게시판에 공황장애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게 다 공부를 안 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연예인 중에 무려 40여명이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고 한다.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을 보면 공부 안 한 티가 난다. 학창시절 농땡이 치던 애들이 끼를 살려서 연예인이 된 거다.
뇌는 부단히 정보를 요구한다. 필요한 정보를 주지 않으면 뇌가 화를 내는 것이 공황장애다. 가짜정보라도 상관없다. 아무러나 뇌에 정보를 주기만 하면 일단 수습이 된다. 그것은 종교의 방법이다. 지식이 있다고 해결되는게 아니다. 최신정보를 수시로 업데이트 해줘야 한다.
연예인들이 그것을 안 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신이 어디쯤 와 있는지 뇌에게 알려줘야 한다. 아무 생각이 없는 일베충은 공황장애에 걸리지 않는다. 그 경우는 뇌가 정보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예인은 스타다. 뇌는 자신이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신의 행동이 집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안다. 집단 무의식이 작용하므로 연예인의 뇌는 특별히 상황에 맞는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한다.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공부하지 않으면 공황장애에 걸린다. 무작정 공부할 이유는 없다. 자신이 어디쯤 와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
일전에 누가 조직 스토킹이라는게 있는데 하며 질문하길래 검색해 봤는데 참으로 가관이다. 이 사람들도 공부를 안 한 것이다. 뇌가 정보를 요구하는데 대응하지 않으면 뇌가 쓸데없이 정보를 자가생산하는데 그게 심하면 미친거고 약하면 불안장애고 빗나가면 망상장애다.
벽투시기가 어떻고 전파탐지기가 어떻고 해킹이 어떻고 하는 소리를 읽어보면 기본 상식이 없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해킹이 뭔지 모르니까 아무데나 해킹을 가져다 붙인다. 심리장애는 생각은 없는데 쓸데없이 관심은 많아서 생기는 병이다. 제 분수에 맞게 살면 치료된다.
그 정도는 아니라도 이 사이트의 방문자들은 대개 한 가지씩 자기 문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가벼운 조울증 정도는 누구나 있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기분이 다운되어 있는 날 건드리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런거 있다. 누구에게나 문제는 있다. 사실은 다 같은 하나의 문제이다.
그것은 인생의 근본문제다. 문제가 있다는게 자랑거리일 수도 있으니 그것이 세상과 교섭하는 나의 창구가 되고 때로는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내게 문제가 있으니 내가 세상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그 상호작용을 해주는 것이다. 상호작용하면 해결된다.
실패는 상호작용을 못하는 막다른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답이 없는 쪽으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한발짝 들어서면 그 안에 또다른 세계가 있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중증이 된다. 이제는 돌아나올 수 없다. 애초에 그 세계로 발을 들여놓지 않아야 한다. 좋은 세계로 가야 한다.
내가 나 자신에게 던진 물음은 이렇다. 내가 이 우스꽝스런 세상에 빌붙어 살아있어도 좋다는 근거 말이다. 첫째 신은 있는가? 둘째 신을 만났는가? 셋째 나는 완전한가? 넷째 나는 만족하는가? 다섯째 내가 이겼는가? 이 물음들에 YES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숨쉬고 산다.
인생의 정답은 굽히지 말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계속하며 전진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신은 의사결정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특정 종교의 신 개념을 들이대면 피곤하다. 신은 모든 의사결정의 궁극적 근거가 되는 일자를 의미한다. 모든 의사결정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가?
신이 없다면 곧 모든 의사결정이 한 방향으로 수렴되지 않는다면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다. 일관되어야 합리적이다. 간단하다. 포개면 된다. 큰 의사결정 안에 작은 의사결정을 집어넣으면 된다. 밥 먹고 똥 싸는 것은 작은 결정이니 옳고 그르고 논할 일 아니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진리를 정면으로 상대하는 의사결정이어야 한다. 작은 것은 그 큰 과정 안에서 용해된다. 둘째 신을 만났는가다. 만나지 못하는 신은 필요없다. 기도하고 은혜를 베풀고 이런건 만나는게 아니다. 그것은 구경한 것이다. 일대일이 되어야 만난 거다.
주인과 노예의 만남은 없다. 주인은 노예를 만나지 않고 다만 부린다. 주인이 자동차를 만나는게 아니고 다만 탄다. 작가는 연필을 만나는게 아니라 다만 쓴다. 일대일의 대등한 관계가 아니면 만난 것이 아니다. 주체와 타자의 관계가 대등해야만 비로소 의사결정이 의미있다.
내가 손해볼 각오를 해야 의사결정이다. 안전한 상태에서의 의사결정이면 가짜다. 내가 다치고, 내가 깨지고, 내가 죽어야 의사결정이라 할 수 있다. 방귀를 뀐다는건 의사결정이 아니다. 그것은 밥을 먹었을 때 정해진 거다. 화장실 가는 것은 생리현상이지 의사결정 아니다.
신을 인식하고 신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신과 닮아야 한다. 그러므로 셋째 나는 완전한가를 묻게 된다. 개인은 불완전하나 집단의 진보는 완전하다. 머리가 좋거나 얼굴이 잘생겼거나 신체가 건강한건 의미없다. 완전성을 결정하는 것은 임무다. 차는 짐싣고 달려야 완전하다.
나의 완전은 집단의 완전성으로부터 연역된다. 집단은 진보할 때 완전하다. 그 집단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인간은 완전해진다. 상호작용하되 근원과 상호작용해야 한다. 말단을 건드리는 짓은 개도 한다. 그것은 세상을 흔들어놓지 않으므로 의미없다. 세상을 타격해야 한다.
세상에 긴장을 조성하고, 세상을 화나게 하고, 그렇게 세상의 반응을 끌어냄으로써 인간의 연주는 완전해진다. 세상이라는 악기에 손대지 않는다면 내 인격이 어떻게 고결하든 말든 완전하지가 않다. 연주하지 않는 완전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리내지 않는 종은 가짜다.
넷째 나는 만족하는가다. 그런데 인간은 원래 불만족하는 존재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만족한다. 인간이 죽음을 겁내고 성공을 원하고 불평을 터뜨리는 것은 인간이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밥만 주면 꼬리치는 개처럼 쉽게 만족하는 존재라면 매우 곤란하다.
인생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지만 만족하지 않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만족스럽다. 북유럽 나라들이나 부탄왕국이나 북한주민들은 만족하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그들의 만족을 비웃을 뿐이다. 내게는 이 말 많고 탈 많은 헬조선이 전혀 만족스럽지 않으므로 만족스럽다.
둔감한 악기보다는 예민한 악기가 좋다. 메갈리아 사태라면 즐겁다. 좀 그래야 한다. 티파니가 욱일기를 어쩌고 이런거 있어조야 한다. 조용한 곳은 공동묘지다. 그것은 죽음의 공간이다. 세상은 시끄러워야 한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보다 시끄러운 정오의 나라가 만족스럽다.
결국 상호작용이다. 물은 흘러야 만족하고 불은 번져야 만족하고 인간은 상호작용해야 만족한다. 술 먹고 헤벌레 하는 것은 만족하는 척 하는 도피행각에 불과하다. 북유럽은 에너지가 없다. 그들은 시든 꽃과 같다. 북한주민은 정말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더 의미가 없다.
눈에 힘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건방도 있고, 긴장도 있고, 예리함도 있고, 섬세함도 있어야 한다. 다섯째 질문은 내가 이겼는가다. 결론적으로 나는 신을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이겼다. 무엇인가? 졌기 때문에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연결이 있는 것이다. 계속 일을 이어가는 거다.
쉽게 이긴 자가 쉽게 진다. 쉽게 명문대 가고, 쉽게 좋은 직장 잡고, 쉽게 좋은 파트너와 맺어져서 행복하게 무덤으로 직행하는 그대는 패배자다. 당신의 의사결정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과 맞서 깨진 증거를 제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이 반응하지 않는다.
어떻게 세상의 반응을 끌어낼 것인가? 이것이 인생의 근본문제다.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해도 본질은 같다.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문제다. 첫째 신이 있어야 한다. 당신의 모든 의사결정이 단 하나의 지점을 바라보고 정렬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의사결정이 일관될 수 있다.
그럴 때 공황장애이든 불안장애이든 극복할 수 있다.둘째 신을 만나야 한다. 그것은 운명의 순간에 운명적인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버지가 시켜서 서울대 간다? 남들이 알아주는 미인과 결혼한다? 이런건 의사결정이 아니다. 주변의 이목이 당신을 대리한 거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손에 꼭두각시로 놀아난 것이다. 당신이 인생 전부를 걸고 운명적인 의사결정을 했을 때 당신은 신을 만났다. 그 운명의 현장에서 당신의 인생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의사결정이 바라보는 그 한 지점을 당신이 변화시켜야 한다. 그렇게 인간은 신을 호출한다.
이 방법으로 신을 불러냈다면 이후 당신의 모든 의사결정은 그 한 지점을 바라보며 거기에 연동되어 일제히 결정된다. 그렇게 당신은 시험에 든다. 그 시험 통과해야 한다. 연동되어 결정되므로 불안장애고 공황장애고 없어지는 것이니 뇌가 즐겁게 상황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뇌의 손에 악보가 쥐어쥐기 때문이다. 악보없는 즉흥연주로 뇌를 당황시키지 말라. 뇌의 대비가 있을때 당신은 완전해진다. 그럴 때 당신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잡다한 사건은 순식간에 용해되어 사라지고 오직 그 하나의 의사결정이 당신의 전부를 결정하며 당신은 순수해진다.
◎ 당신의 신은 있는가? - 모든 의사결정이 한 지점을 바라보는가?
◎ 당신은 신을 만났는가? - 인생을 건 운명적인 의사결정을 했는가?
◎ 당신은 완전한가? - 나는 세상과 충분히 상호작용하고 있는가?
◎ 당신은 만족하는가? - 나는 세상의 반응을 끌어내고 있는가?
◎ 당신은 이겼는가? - 다음 세대로 일을 이어가고 있는가?
그러므로 완전하다. 그러나 곧 오염되고 만다. 당신은 그 의사결정에서 무수히 벗어난다.곡이 완전하더라도 연주하지 않으면 허당이다. 운명적인 의사결정에 맞는 상호작용을 계속해야 한다. 노무현이 청문회 현장에서 정주영을 까기로 결정한 순간에 그는 신을 호출한 것이다.
5천만 국민과의 부단한 상호작용이 기다리고 있다. 그럴 때 세상이 반응한다. 당신은 불만이어야 한다.만족하면 지는 거다. 신이 있다고 끝내면 만나지 못하고, 만났다고 끝내면 완전하지 못하고, 완전하다고 끝내면 만족하지 못하고, 만족했다고 끝내버리면 이기지 못한다.
당신은 신을 타격해야 한다. 그래야 만난다. 만나서 흔들어야 한다. 그래야 반응한다. 함께 소리내고 춤을 추어야 한다.그럴 때 당신은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스탭이 엉켜서 충분히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 크게 실망한 자가 크게 이긴다. 이겨야 일은 다음 단계로 이어간다.
스승이 죽어도 제자가 이어간다. 불은 타는 속도로 꺼진다. 계속 꺼지면서 계속 번져간다. 당신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런 저런 소리를 하지만 본질은 같다.당신의 신이 있어야 하고, 만나야 하고, 완전해야 하고, 만족해야 하며, 이겨야 한다. 당신은 모두 실패한다.
일은 계속 이어져 간다. 노무현은 모두 실패했지만 일은 더욱 크게 번졌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래 인류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일이 아니다. 나야 눈 감고 손 떼면 그만이다. 인류의 일을 내가 끌어낸 거다. 가만있는 신을 그대가 불러낸 것이다. 원래는 내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의 문제였다. 내가 인류의 대표자로 행한다. 인생에 얻는 것도 없고 잃는 것도 없지만 이야기는 계속 간다. 본래 인류의 것을 내가 빌려 쓰고 되돌려 주는 것이다. 나와 너와 인간과 세상과 신의 경계를 허물어 지우는 것이다. 완전한 것은 그렇게 계속 가는 것 뿐이다.
언젠가 어느 산 속 작은 선방을 방문했더랬는데 보살님이 물었습니다. 그래 인생의 문제들은 다들 해결했고? 예의에 맞는 답은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일 테지요. 해결했다고 하면 그럼 여기는 왜 왔냐 하는 핀잔이 날아올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워낙 떠돌아다니면서 막 산 사람이라 인간들 사이의 예의를 모르니. 불현 듯 깨달았습니다. 그래 인간들에게는 다들 하나씩 문제가 있었지. 그 문제를 마치 보물처럼 애지중지 하며 사는 거지.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고칠 생각은 전혀 없는 거지. 어쩌면 그것이 세상을 향해 열어놓은 유일한 창구일지도. 그렇습니다! 문제가 있어서 오히려 인간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불완전해서 완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만족하지 못해서 세상을 향해 말을 걸 수 있습니다. 이기지 못해서 부단히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