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끝까지 버텨라.**
구조론은 사건을 추적하는 이론이다. 사건은 에너지를 따라가고, 에너지는 낙차를 따라간다. 집단의 의사결정 에너지는 내부 상호작용 총량이 낙차를 구성한다. 상호작용을 끌어내는 것은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한겨레와 경향과 종편들이 무수히 발굴하고 있다. 캐도 캐도 끝이 없다.
게다가 독일과 물리적 거리가 멀다. 거리가 멀수록 대중의 주목도는 높아지고 에너지 낙차는 커진다. 연결되는 라인의 숫자는 거리와 반비례한다.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은 뒷문이나 옆문으로 들어올 수 있지만, 먼 곳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비행기 트랩을 거쳐서 들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버티며 추태를 부리면 부릴수록 반대파에게 이롭다. 아직은 박근혜를 동정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 추종자들에게 괴로움을 선사하면 넌더리가 나고 마는 것이다. 전설의 지지율인 김영삼의 5퍼센트를 제치고 드라마는 계속된다. 이제 끔찍한 배신의 드라마를 볼 차례이다.
나경원이 치고 나온다. ‘1번 배신은 나라구.’ 유승민이 거든다. ‘무신 소리? 원조 배신은 나잖아!’ 신문기자라면 반색을 하는 김문수, 이재오, 홍준표라고 가만있겠는가? 찬스라고 목청 높이는 인간들 꼭 있다. 이것이 또 구경거리가 되어준다. 내부에서 끝없이 상호작용 일어나는 것이다.
연산군의 마지막 날과 같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날인데 뭔가 조용하다. 신하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내시도 도망가고, 시녀도 사라졌다. 적막강산에까마귀만 울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 막장을 구경해야 한다. 현시창임에도 박근혜는 그 무대에서 계속 주연하고 싶을까?
예쁘게 물러나기는 어제와 그제가 찬스였다. 꾸물대다 개처럼 끌려내려오는 일만 남았다. ‘미친 무당년에게 홀렸다.’는 그럴듯한 제목이 붙여졌으므로 추종자들도 입장을 바꾸는데 전혀 부담이 없다. 원래 인간은 일거리를 던져주면 그 쪽으로 주의가 쏠려 현안을 잊어버리는 법이다.
하야 하면 된다. 촉박한 정치일정에 홀려 여당도 야당도 언론도 국민도 정신없게 된다. 그 틈에 슬그머니 해외로 나가서 편하게 살면 된다. 번개탄 살 돈이 없어 자살도 못하고 있는 민초들과는 다르다. 물러나기만 하면 고생끝 행복시작이다. 그 좋은걸 왜 안 해? 아마 종교 때문이리라.
최순실교 신앙의 힘에 의지해 왔는데 그것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인간은 욕망에 의지하는 동물이 아니라 에너지에 의지하는 동물이다. 그 에너지는 증오에서 나오고 그 증오는 복수심에서 나온다. 그 복수심은 부모의 죽음 때문에 형성되었다. 그 죽음이 종교가 되고 신화가 된다.
대한민국을 모욕하고 능멸함으로써 한풀이 하려는 마음 속 깊은 곳의 응어리가 있었다. 누구든 그렇다. 김흥국 아저씨든 명계남 아저씨든 평범한 아저씨를 높은 자리에 올려놓으면 반드시 추태를 부린다. 마음 속에 악이 들어차서 그런게 아니다. 인간은 원래 무조건 나빠지게 되어 있다.
나는 착한 사람이니까 잘 하겠지.
거대한 교육의 장이 열렸소이다. 이참에 모두 공부하도록 하시오. 바로 저게 인간의 본래 모습이라오. 인간은 원래 너나없이 추한 존재입니다. 오직 바닥을 찍고 와서, 정상을 본 자 만이 방어하는 것이며, 방어하는 동안만 겨우 인간의 꼴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방어할 그 무엇이 당신에게 있습니까? 이념을 방어하고, 민주주의를 방어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방어할 에너지가 당신 내부에 있느냐 말입니다. 방어할 그 무엇이 없는 자는 반드시 복수합니다. 대한민국에 복수하고 인류에게 복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