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을 주목한다
다음은 충청 아니면 호남인데 안희정에게는 이번에 실망했다. 문재인이 유비라면 안희정은 관우가 되고 이재명은 장비가 되어야 하는데 안희정에게는 관우의 의리가 없었다. 안희정은 너무 정치적으로 행동한다. 그새 닳은 거다. 신선함이 없다.
필자가 경계하는 것은 소인배의 아부행동이다. 언론에 아부하고 유권자에게 아부하고 야당에도 아부하면빠르게 클 수 있지만 그만큼 썩는다. 정치인은 설익은 풋사과라도 곤란하고 썩은 과일이라도 곤란하다. 주변과의 얽힘은 적절해야 한다.
너무 많이 엮여도 안 되고 안철수처럼 겉돌아도 안 된다. 노무현은 10여 년간 야인생활을 하느라 여의도와 얽히지 않았다. 문재인도 다선의원은 아니라서얽힐 기회가 없었다. 안희정은 2002년부터 이름을 알려왔는데 그동안 너무 얽혔다고 본다.
임종석이 적당하다. 호남출신이지만 호남 기득권과 얽히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노무현처럼 10년을 야인으로 보냈다. 한 번은 이명박 뉴타운 바람에 밀렸고 두 번째는 정치자금법 위반인데 한명숙이 말렸는데도 불출마 고집을 꺾지 않았다.
정치자금법은 무죄를 받았지만, 사법부 판단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는 상대당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지역구 관리를 안 했다가 골목인사 열심히 하는 정치신인에게 밀려 공천도 못 받았다. 이쯤 되면 반은 노무현이다.
전대협 의장노릇을 하며 나름 한국사의 중요장면에 얼굴을 내민 것은 포레스트 검프 문재인을 연상케 한다. 임수경을 북한에 보낸 것이다. 이는 구조론에서 말하는 대표성 개념이 있다는 의미다. 대표성 개념이 있는 사람이 공사구분을 잘한다.
안철수의 무개념과 비교된다. 안철수는 왜 초딩인 걸까? 현대사 중요장면에 있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87년 그해 여름 최루탄 향기 가득한 아스팔트를 달려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자기 생각을 말하면 안 된다. 하지 말라는 자기소개다.
문재인은 그 점에서 과묵하기로 유명하다. 마이크 한 번 잡으면 안 놓기로 유명한 김대중, 노무현과 다르다.유시민은 경솔하게도 그냥 자기 느낌을 말해버린다. 훈련이 안 되어 있다. 개그맨이라면 몰라도 지성인이라면 유시민은 자격미달이다.
정치인은 진리의 생각을 대표하여 말하고, 대한민국의 생각을 대표하여 말해야 한다. 임종석은 이것을 경험적으로 훈련하고 있다. 임수경이 북한에 간 것은 세계사적 의미로 풀어야지 개인의 돌출행동이 아니다. 노벨평화상이 그냥 나오겠는가?
어떤 행동을 해서 곧 인과법칙에 따라 결과가 나온다고 믿는 게 안철수나 유시민 부류의 유아틱한 태도다. 인간이 철이 들어야 한다. 철이 든 사람은 행동에 결과는 없어도 대신 확률이 따르고 그 확률로 다른 사람에게 혜택이 간다는 사실을 안다.
방북은 임종석이 주도하고 임수경이 실행했지만, 노벨평화상은 김대중 대통령이 받고 그 혜택은 대한민국의 국제적인 평판이 높아진 결과로 받고 그 후폭풍은 아베의 질투를 불러일으켜서 아베가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결과로 나비효과를 낳는다.
임종석의 어떤 생각이 30년 후에 아베의 어떤 멸망으로 귀결되는 복잡한 방정식을 이해하는 사람은 안철수나 유시민의 유치한 표정을 짓지 않게 된다. 왜? 생각보다 복잡하거든. 건드리면 바로바로 반응이 와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지성인만 안다.
물론 이는 비유로 말한 것이다. 방북이 옳았느냐 옳지 않았느냐 하는 판단은 유치발랄한 것이다.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말이다. 세계사적인 사건의 중심에 서다 보면 세계사 단위로 사고하는 시선을 얻게 된다. 정상에 서야만 정상이 보인다.
지리산 정상에서만 덕유산 정상을 볼 수 있다. 기슭에서는 정상이 보이지 않고 정상에서도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서는 정상을 보지 못하고 대신 다른 산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게 호연지기다. 그 어떤 선을 넘은 사람은 얼굴이 달라진다.
임종석은 얼굴에 정치인 특유의 비열한 기운이 없다. 유쾌하다. 청와대 생활도 즐기는 듯하다. 야인생활을 하느라 적을 만들지도 않았다. 10년간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국민의 궁금증도 키웠다. 게다가 새로운 캐릭터다. 김대중은 지사 이미지다.
노무현은 서민 이미지다. 문재인은 신사 이미지다. 임종석은 이와 다른 즐거운 이미지다. 사람들은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에 열광하기 마련이다. 나이도 51세로 적당하다. 그렇다면 노려볼 만하다. 내년에 서울시장 후보로 나온대도 놀랍지 않다.
그다음 대권으로 간대도 납득이 되는 그림이다. 지켜보았지만 잘 커 주는 정치인이 없었다. 다선의원 해서 제대로 커 주는 정동영, 김근태, 천정배, 이부영, 정세균, 신기남, 문희상, 정대철이 없었다. 왜 그들은 커 주지 못할까? 서로 얽혔기 때문이다.
얽혀서 서로 닮는다. 차별화를 못하고 같아져 버린다. 정치권 밖으로 겉도는 게 차라리 낫다. 찬스는 언제나 외곽에서 온다. 필자가 그동안 정치인에게 기대했다가 실망한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제법 느낌이 좋다. 일단 지켜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