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모르는 인간의 비밀
성공한 사람은 대부분 열정을 강조한다. 그 열정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열정페이라는 말이 있다. 위태롭다. 인간에게는 열정이 필요하지만 그 열정을 강요하면 안 된다. 필자는 20년 전부터 열정이라는 말을 간간이 써왔지만 이 단어에 만족하지 못했다. 어딘가 불편하다. 존엄이라는 말도 있고 주체라는 표현도 있다.
주체는 김일성 때문에 망했고 존엄은 권위주의적이다. 주인과 하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주인의 시선을 얻어야 한다. 호연지기라 한다. 그것을 얻은 사람이 천하인이다. 이 표현은 일본만화 냄새가 나서 좋지 않다. 니체의 초인도 있다. 인간을 격동시키는 그것이 있어야 한다. 불이 있어야 한다. 불을 얻어야 한다.
그것은 대표성이다. 신과의 일대일이다. 정상에서 전모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 눈높이를 얻어야 한다. 집단 속의 개인이 아니라 인류를 대표하는 강한 개인이어야 한다. 그럴 때 가슴 속에 불이 일어난다. 그 불은 모두의 가슴에 옮겨붙는다. 세상을 불태운다. 일대사건 일으켜야 한다. 필요한 것은 에너지다. 의사결정할 수 있다.
집단을 대표하여 의사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집단에 종속되면 안 된다. 그 집단에서 이탈해도 안 된다. 옛날에는 진인이니 이인이니 하는 것이 있었다. 공자의 군자도 있다. 약하다. 천하의 마음을 읽고, 천하의 고통을 느끼고, 미래를 내다보고, 세상을 바꾸는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의사결정을 해내야 한다. 대결해야 한다.
무릇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다. 자연을 움직이는 물리적 에너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다. 인간을 움직이는 의사결정 에너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정신력이니 근성이니 하는 것이 있지만 유치하다. 영혼이니 이데아니 이성이니 하는게 말해졌지만 어떤 아저씨가 그냥 지어낸 말이다. 프로이드 초자아도 근거가 없다.
자아는 누구나 있다. 거기에 에너지를 부여하는 것은 원시의 본능이다. 물에 빠진 아기를 구하는 엄마가 괴력을 발휘한다든가 하는 것이다. 그 본능은 동물도 있다. 동물적 본능이 아닌 인간의 이성으로 위기상황에서 괴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윤봉길 의사로 하여금 폭탄을 던지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열정이니 존엄이니 호연지기니 주체성이니 주인의식이니 깨달음이니 하는 말은그 의사결정 에너지를 의미한다. 초인이니 군자니 천하인이니 강한 개인이니 하는 말은 그 에너지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그런 사람 있다. 특별한 사람이다. 뜻을 품은 지사도 있고 실천한 의사도 있다.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그것은 무엇인가?
인생의 정답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이기는 편에 들어야 한다. 진리의 팀에 가담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전을 해야 한다. 조금씩 확률을 올려가는 거다. 전술보다 전략을 써야 한다. 생존보다 세력을 추구해야 한다. 하부구조가 아닌 상부구조를 건드려야 한다. 자기 생각을 감추고 대표성을 얻어야 한다.
인생은 게임이다. 게임은 아와 비아의 대결이다. 피아를 구분하는 것이 타자성이다.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내가 정하기 나름이다. 금을 잘 그어야 한다. 잘못하여 부모를 적으로 돌렸다간 낭패다. 누가 적이고 동지인지는 내가 무엇을 바라보는가에 달려 있다. 천하를 찜쪄먹는 높은 시선을 얻어야 한다.
소인은 낮은 곳을 바라보므로 그 범위를 좁게 잡고 자신의 주변사람을 이기려고 한다. 영웅은 높은 곳을 바라보므로 그 범위를 넓게 잡고 신을 이기려 한다. 운명을 이기려 한다. 군자의 시선, 초인의 시선, 영웅의 시선을 얻어야 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대표성에서 나온다. 그 대표성은 게임에서 나온다.
나와 타자를 어떻게 구분하는가? 가족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엮이면 망한다. 집단에 의존하게 되어 망한다. 어리광 부리는 소인배가 되어 망한다. 대표성을 잃고 에너지를 잃는다. 의사결정에 실패한다. 무의식적으로 집단을 위하여 경고를 보내는 파수꾼이 되어서 망한다.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에 다가서려고 오버하다가 망한다.
이제 집단에 다가서려 하지 말고 이미 집단을 대표하고 있어야 한다. 감독의 눈치를 보며 번트댈까 말까 망설이다가 망한다. 자신의 계획이 서 있어야 한다. 다음 단계의 전략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인생의 답은 게임체인지다. 나와 타자 사이에 그어진 금을 바꾸기다. 동성애자는 적인가? 조선족은 타자인가? 북한은 적인가?
일본은 적인가? 미국은 우리편인가? 그 금을 바꿀 때 게임이 바뀐다. 약자를 응원하는 언더독게임에서 강자의 승리요인을 복제하는 탑독게임으로 바뀐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다. 소인의 시선에서 군자의 시선으로 바뀐다. 파수꾼 시선에서 대표자 시선으로 바뀐다. 조연의 관점에서 주연의 관점으로 눈높이가 바뀐다.
그러려면 불을 얻어야 한다. 에너지를 얻어 운명적인 만남을 일으켜야 한다. 만남의 확률을 높여가야 한다. 미리 그 지점에 가서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도원결의해야 한다. 스스로 신분을 높여야 한다. 목사에게 의사결정 위임하는 신도가 되지 말고 신과 일대일로 대결하는 의사결정권자 되어야 한다. 그렇게 신분상승해야 한다.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인간을 오해하고 있다.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다. 이데아도 없고 이성도 없고 오성도 없고 영혼도 없다. 그런거 없다. 1살 아기와 침팬지를 비교하면 침팬지가 더 낫다. 똥도 인간 아기보다 먼저 가린다. 걸음마도 인간보다 먼저 해낸다. 명령을 내리면 잘 수행한다. 이는 오래 전에 실험으로 밝혀진 바다.
인간이 침팬지보다 나은 점은 하나다. 모방을 잘 한다. 이유도 모르고 괜히 다른 사람의 행동을 따라한다. 침팬지와 같이 키웠더니 아기가 침팬지의 행동을 따라해서 문제가 되었다. 과학자의 실험은 9개월만에 중단되었다. 인간은 협력하는 동물이다. 그 협력이 문제가 된다. 협력한다는 것은 의사결정을 안 한다는 말이니 위태롭다.
사이코패스가 승승장구하는 일은 흔하다. 인간성이 박약한 자가 오히려 출세한다. 왜? 인간의 인간다운 특징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지구 상의 어떤 동물보다도 약하다. 1천개체 이하로 줄어 멸종위기까지 간 적도 있다. 협력은 인간을 약화시켰다. 그 결과 히틀러와 이명박이 출현했다. 사이코패스가 인간을 위협한다.
협력의 단점을 극복해야 하고 협력의 장점은 강조해야 한다. 인간의 사회성은 양날의 칼이다. 인간은 특히 여성을 중심으로 다양한 표정과 발달한 언어로 협력하는 기술을 발달시켜켰다. 여성이 진화를 주도한 것이다. 여성이 말을 더 잘한다. 타인의 감정을 잘 읽는다. 대신 냉철한 결단력을 잃었다. 겁이 많은게 인간다운 것이다.
겁이 없으면 사이코패스다.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겁이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역시 불을 얻어야 한다. 무엇이 인간을 강하게 하는가? 쾌락이나 행복이 인간을 강하게 하지 않는다. 마광수는 10년이 지나지 않아 한국사회가 야하게 변할 거라고 예견했지만 틀렸다. 한국은 되레 보수화 되었다. 한국인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쾌락이 에너지를 주지 못했기에 한국이 보수화 된 거다. 섣불리 쾌락을 탐하여 미녀에게 들이대다가 핀잔을 맞고 주눅들었다. 행복이 에너지를 주지 못한다. 그것은 약자의 자기위안에 불과하다. 성공과 출세가 에너지를 주지 못한다. 그것은 콤플렉스를 들키는 것이다. 타인과의 비교평가로 어떻게 해보려는 시도는 실패한다.
교실에다 10분 더 공부하면 미래의 남편감이 바뀐다고 써붙이는 것과 같다. 개그소재가 될 뿐이다. 그것은 어설픈 것이다. 왜? 그럴수록 나와 남을 구분하는 금이 견고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를 가두어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나의 행동반경을 축소시키기 때문이다. 운명적 만남의 확률을 낮추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없는 거다.
워즈니악을 만난 잡스의 눈빛을 얻을 수 없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결기를 얻을 수 없다. 왜? 약자와 비교하면 되기 때문이다. 성공이니 출세니 하는 식으로 말해지는 콤플렉스에 의한 동기부여는 어린 시절 자신을 무시한 누군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 어린 시절의 누구는 별볼일 없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면 깨닫게 된다.
그때 그시절 나를 엿먹인 친구나, 나를 꾸짖은 아버지나, 나를 구타한 깡패나 한없이 약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린 시절의 친구는 평범해져서 돈이나 꾸러 온다. 늙어버린 아버지 체격은 왜소해져 있다. 깡패는 감옥에 가 있다. 별것 아닌데 쫄았던 거다. 그걸로 동기부여 해봤자 안철수될 뿐 천하를 도모할 수 없다.
마동탁이 설까치를 부추겨 동기부여 했지만 별건가? 이현세도 콤플렉스가 있었겠기에 만화가 되었다. 이문열은 빨갱이 콤플렉스 덕에 책깨나 팔았다. 그 콤플렉스가 이문열의 발목을 잡았다. 일찍 성공해서 자기를 무시한 잘난 친구들 앞에서 우쭐하려는 마음이 세상과 그를 결별하게 만들었다. 성공에 가까울수록 진리와 멀다.
진실을 말하자. 인간을 강하게 만드는 것, 천하인의 눈높이를 심어주는 것, 가슴에 불을 일으키는 것은, 세상의 어떤 약점을 보았을 때다. 나를 강해지게 하는 것은 의를 일으키는 것이며, 이에 필요한 것은 지를 얻는 것이며, 그 전에 인이 필요하다. 내가 세상에 받아들여지는지다. 차별되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불가촉천민이다.
세상의 어떤 약점을 본다는 것은 내가 세상에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와 한 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도 없고 학벌도 없는 잡스가 미국의 중심부에 받아들여질까? 일단 어그로를 끌어야 한다. 전화망을 해킹했다. 미국에 싸움을 건 거다. 미국과 잡스 사이에 매서운 금이 그어져버린 거다.
그는 확률을 높이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왜? 그곳은 첨단의 곳이고 겁대가리 없이 첨단에 들이대는 자의 마음은 한결같기 때문이다. 만날 사람을 만났고 불이 일어났다. 그때는 해커가 시대의 첨단이었다. 뾰족한 첨단에 가 있으면 만날 사람이 만나진다. 봉건사회에 그곳은 궁정이었다. 이백은 궁정에서 쫓겨나다 두보를 만났다.
44살의 이백이 궁궐에서 추방되어 낙양에 이르렀을 때 33살의 두보를 만났으니 옛 학자는 그 만남을 두고 청천에서 태양과 달이 충돌한 것과 같다고 했다. 한때는 그곳이 사교계의 무도회였다. 요즘은 벤처기업이다. 한때 PC통신에서 두루 만났다. 학교에서 친구를 만나고 결혼으로는 배우자를 만나고 직장에선 동료를 만난다.
만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차별하므로 우리 만나지 못한다. 이성애자니 동성애자니 따지고 남자니 여자니 분별하고 돈과 신분과 학벌로 장벽을 쌓으니 만나지 못한다. 그 장벽이 허물어질 때 인간은 세상의 어떤 약점을 보는 것이며 자신에 세상에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확신을 얻는다. 가슴에 불이 붙는다. 도원결의로 나아간다.
장벽이 없어도 만나지 못한다. 섞여서 같아져버리기 때문이다. 장벽이 있어도 만나지 못한다. 장벽에 막히기 때문이다. 우리 일베충을 차별해야 한다. 그래야 방해받지 않고 아는 사람끼리 조용하게 만날 수 있다. 우리 문화와 예절로 차별해야 한다. 그러나 그 문화와 예절이 만남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되지 않는지 주의해야 한다.
진실을 말하자. 인간은 전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고 환경에 지배되는 수동적인 동물도 아니다. 인간의 문제해결 능력은 침팬지보다 못하다. 약간의 난관이 있으면 다른 사람 얼굴을 쳐다볼 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들지 않는다. 목사를 쳐다보고 스님을 쳐다보고 부모를 쳐다보고 스승을 쳐다본다. 그러다가 망한다.
일찍이 다윈이 갈파했듯이 인간은 원숭이와 다름없는 존재이며 일찍이 프로이드가 충고했듯이 인간은 죄다 또라이다. 제정신 있는 사람은 없다. 전혀 없다. 대부분 분위기를 읽고 무의식 중에 본능에 응답하며 가는 곳을 모르고 홀려서 군중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작동하는 것은 인간의 탁월한 복제능력 덕이다.
한 사람의 대표자가 바른 판단을 하면 일제히 복제한다. 그 한 사람은 노무현이다. 좋았다. 이명박이다. 망했다. 트럼프다. 변해야 산다. 누구를 복제하는가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 인류가 여기까지 온 것은 간간이 지도자가 출현했고 인간이 그 지도자의 행동을 복제했기 때문이다. 절대 당신들의 개인적 능력이 아니다.
히틀러를 복제하다 망한다. 박정희를 따라하다 망한다. 홍준표 망하고 안철수 망한다. 인간은 전혀 이성적 존재가 아니며 그렇다고 환경에 지배되는 동물도 아니며 인간은 게임하는 동물이니 우리는 단지 게임의 종목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나쁜 게임을 하면 나빠지고 좋은 게임을 하면 좋아진다. 나쁜 친구에게 물든다고 한다.
사실이기도 하지만 사실이 아니기도 하다. 부모들은 대부분 자녀가 친구를 잘못 사귀었다고 변명하지만 이미 나쁜 게임 안에 들어가 있다. 나쁜 친구를 사귀는 이유는 사회와 국가를 적대하기 때문이다. 이는 본능의 작용이니 소년은 별도로 자기 부족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왜? 부모 역시 자기 부족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를 명문대 보내려 하는 심리는 국가를 믿지 못하고 사회를 믿지 못하고 근원적 불안에 빠져서 자기 부족을 일으켜 적대적인 사회와 국가와 자기 사이에 금을 긋는 것이다. 부모가 부족을 만들려고 자녀를 닥달하니 자녀도 부족을 만들려고 패거리행동을 한다. 나쁜 친구를 사귄게 아니라 실은 나쁜 부모를 만난 거다.
집단과 자기 사이에 금을 잘못 그으면 자녀가 그것을 복제한다. 사회를 적대하는 시선을 들키니 불안해서 자기 패거리를 만든다. 부모의 심리적 불안이 자녀에게 복제된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타인의 마음을 읽고 그것을 복제한다. 누군가에게 화가 난다면 상대방 마음이 내게 복제된 거다. 자녀가 뚱한 표정으로 있으면 화 난다.
자기도 모르게 화를 낸다. 인간은 감정을 복제하는 동물이다. 내 생각이 내 생각이 아니고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다. 한국인이 불행했던 것은 무의식적으로 이명박근혜 나쁜 마음을 복제했기 때문이다. 환경이 인간을 지배하는건 아니다. 노무현처럼 나쁜 환경에서 자라면 나쁜 사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사람 된다.
반면 안철수처럼 좋은 환경에서 자라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사람이 된다. 만남이 있어야 한다. 노무현은 형의 영향을 받았다. 만날 사람을 만났기에 나쁜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강해진 것이다. 바른 사람은 나쁜 환경을 장악하고 극복할 수 있다. 주도적으로 좋은 게임을 선택할 수 있다. 큰 게임을 선택해야 한다.
하부구조를 버리고 상부구조에 올라서라. 자녀를 잘 키우는 게임은 나쁘고 천하를 바꾸는 게임은 좋다. 게임 체인지가 에너지를 유도한다. 이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세상의 어떤 약점을 봐야 한다. 내가 비빌 언덕을 발견해야 한다. 찾아보면 세상의 허술한 구멍이 보인다. 끝까지 가면 내가 받아들여질 것임을 확신해야 한다.
그래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도원결의하여 팀을 건설하고 장기전으로 밀어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간다. 세상과의 싸움이다. 전위에 서야 한다. 낡은 종목을 버리고 새 종목을 찾아야 한다. 문화와 예술과 트렌도와 첨단에서 우리 그것을 찾을 수 있다. 거기 가 있어야 한다. 앞으로 어떤 종목이 뜰지 미래를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