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병을 치료하는 방법
병을 치료하는 사람은 의사다. 의사는 도덕을 논하지 않는다. 선악을 따지지 않는다. 옳고 그름의 판단에 관심이 없다. 의사가 믿는 것은 메스 뿐이다. 그것은 기술이다. 우리는 쉽게 도덕으로 도피하려고 한다. 도덕이라는게 뭔가? 선악이라는게 뭔가? 옳고 그름이라는게 뭔가? 무뇌진보가 좋아하는 도덕과 선악과 정치적 올바름이라는게 도무지 무엇인가?
의사가 수술을 회피하면 이렇게 된다. 말로 때우려는 거다. 왜? 보여줄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메스가 없기 때문이다. 연장이 없기 때문이다. 도덕이란 집단의 구성원이 다수의 행동패턴을 복제하는 것이다. 집단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의 행동을 복제하면 잘 된다.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동물적 본능이다. 도덕은 결코 이성의 산물이 아니다.
인간이 원숭이와 다른 점은 목표로 곧장 다가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물은 실험자가 감추어놓은 먹이를 찾는데 열중한다. 실험자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가 곧장 먹이를 향해 돌진한다. 인간은 다르다. 먹이를 쳐다보지 않고 실험자의 얼굴을 쳐다본다. 먹이와 상관없는 실험자의 행동을 복제한다. 인간은 그러다보니 동물에게 없는 표정을 잘 발달시켰다.
인간은 웃고 울고 노래하고 춤추고 게임하는 동물이다. 왜 인간은 이런 짓을 하는가? 이딴게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다 쓸데없는 짓이다. 시간낭비다. 인생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웃고 울고 노래하면 맹수가 그 소리를 듣고 침입한다. 춤추면 배가 고파진다. 게임하면 먹이활동을 할 시간을 뺏긴다. 그런데 왜 인간은 그렇게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일까?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복제하는 것이다. 인간은 항상 리더를 주시한다. 무의식적인 행동복제를 즐기다가 리더의 행동을 복제하게 되고 그러다가 우수해진다. 도덕은 그러한 행동복제의 산물이다. 인간의 언어는 보디랭귀지에서 발달한 것이며 그 역시 타인의 행동을 복제한 결과다. 왜 인간에게만 언어가 있을까? 복제 때문이다. 너는 나를 반대로 발음한 거다.
없다는 있다를 반대로 발음한 거다. 무는 유를 반대로 발음한 거다. 아빠는 엄마를 반대로 발음한 거다. 있다는 턱으로 사물을 가리키는 동작이다. 없다는 반대로 입을 다물어 거둬들이는 동작이다. You는 Me를 반대로 발음한 것이다. You는 입술을 내밀어 상대를 가리키고 Me는 그 입술을 거둬들여 자기를 가리키는 동작이다.언어는 행동복제의 산물이다.
처음에는 손짓발짓이었던 것이 입술짓, 이짓, 혀짓, 턱짓, 목구멍짓으로 바뀌며 언어가 되었다. 복제하기, 대칭하기, 반복하기, 비틀기, 붙이기의 방법으로 언어는 발달해왔다. 대칭의 짝짓기를 통해 복제는 풍부해진다. 집단의 방향성을 복제하는 것이 선이며 반대로 질풍노도의 반항시기에 자기네의 소집단을 일구어 집단으로부터 독립하려는 것이 악이다.
언어가 대칭을 통해 발달해 왔듯이 선악은 대칭시킨 것이다. 인간의 선과 악은 본능적인 것이며 집단무의식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므로 무뇌진보가 좋아하는 도덕논리나 선악논리나 정치적 올바름 논리는 사실이지 무의식에 속하는 것이며 본능에 속하는 것이며, 그 소속집단이 올바르다면 올바른 결과를 낳게 되지만 일베충 집단에 속한다면 나빠진다.
집단의 성격에 따라 선악과 도덕과 정의가 뒤틀리고 만다. 알아야 한다. 당신네가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선악이 그리고 도덕과 올바름이 사실은 동물적 본능과 무의식과 행동복제에 불과하다는 잔인한 진실을. 인간은 그저 남이 하는 짓을 따라하는 존재임을. 그리고 거기에다 선악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버려라. 의사의 방법을 따르라. 의사는 선과 악이 없다.
생살을 찢고 암을 도려낸다. 의사가 사람의 생살을 찢었다고 해서 악이라고 하지 않고 암을 도려냈다고 해서 선이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기술이라고 한다. 의사는 언제라도 기술과 연장을 쓰는 것이며 기술과 연장은 선악이 없다. 우리 의사의 방법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건축가가 벽돌을 쌓아올리듯 건조한 태도가 아니면 안 된다. 선악판단 유보하라.
한국병은 갑질병이다. 왜 한국인은 갑질할까? 인간은 누구든 권력을 추구한다. 정치권력을 말하는게 아니다. 집단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방법으로 집단에 소속되려고 하는 것이다. 집단이나 환경과 내가 분리되지 않고 긴밀하게 연동되어 서로 상호작용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언제라도 집단의 반응을 끌어내려고 하며 집단을 자극하려고 하는게 인간이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없어도 지구가 별 탈없이 잘 돌아가는 것이다. 지들끼리 놀면서 나를 불러주지 않는 것이다. 동료를 잃고 혼자 금 밖으로 밀려나 배척되는 것을 무서워한다. 훈련된 병사들은 원래 전쟁터에서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는다. 사기가 충천해서도 아니고 애국심 때문도 아니다. 정신력 좋아하네. 그런거 없다. 병사는 왜 싸우는가?
규칙이 지켜지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다. 그럴 때 병사는 집단과 내가 한 몸으로 엮여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용감해진다. 언제 도주하는가? 동료가 규칙을 어길 때다. 밥이 오지 않으면 일단 도망친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도망간다. 배후에서 호응하기로 약속한 2중대가 나타나지 않으면 도망친다. 집단과 분리되어 불안정할 때 병사는 그만 도망친다.
사기, 용맹, 정신력 이런건 다 개소리다. 무적의 나폴레옹 근위병도 워털루에서는 도망쳤다. 용감한 병사들이 왜 도주했을까? 웰링턴이 언덕 위에 창을 꽂아놨기 때문이다. 돌발상황이다. 이건 약속에 없다. 규칙에 없다. 패닉에 빠진다. 대오가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그때 나폴레옹이 있었다면 결코 도망가지 않았을 것이다. 눈빛만 봐도 통하는 것이다.
하필 나폴레옹은 배탈나서 막사에 들어갔고 근위병들은 좌우를 둘러보았지만 어떻게 대응하라고 지시하는 사람이 없었다. 전군붕괴. 순식간이다. 지휘관의 고함 한 번으로 수습될 수 있는 작은 사태가 하필 공교롭게도 그때는 고함질러주는 사람이 없어 눈사태처럼 커진 것이다. 대부분 이런 식이다. 인간은 집단과 결속하려 하며 느슨해지면 패닉에 빠진다.
때로는 집단으로부터 밀려나지 않으려고 자기가 먼저 다른 사람을 밀어내는 차별행동을 한다. 갑질행동, 진상질행동, 왕따행동, 차별행동이다. 조선족과 동성애자와 여성과 약자를 밀어내면 나는 든든하게 집단과 결속되겠지 하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 돈돈돈 하는 한국병은 사실 권력병이다. 사람이 돈에 집착하는 것이 사실은 권력에 집착하는 것이다.
돈 벌어서 뭐하냐 하면 갑질하고 진상질하고 성매수하고 우쭐대고 폼잡고 그런다. 그걸로 쪽팔림과 어색함과 민망함을 회피한다. 돈으로 환경과 긴밀해진다. 실패다. 중국인들이 돈돈돈 하는 이유는 권력을 가질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만주족이 지배하는 청나라다. 한족은 뭘해도 권력자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돈돈돈이다. 돈으로 권력을 사들이는 것이다.
한국병을 치료하는 기술은? 사회주의다. 그러나 고립된 지역은 사회주의 방법도 먹히지 않는다. 왜? 의사결정비용 때문이다. 고립된 지역에서 더치페이는 의사결정 비용을 더 증가시킨다. 무인도에 두 명이 살면 둘이서 오순도순 사이좋게 잘 대화해서 의사결정할 거 같지? 천만에. 그 반대다. 고립된 무인도에서는 절대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를 못한다.
아는 사람끼리 있으면 더치페이 안 한다. 왜? 의사결정비용이 증가하거든. 차별하고 서열 정하고 역할분담하고 미리 규칙을 정해놓는게 합의하고 토론하고 대화하고 사랑하는 것보다 편하다. 사랑 안 한다. 무인도에 아담과 이브가 둘이 살면 바로 등을 돌린다. 서로 역할을 정해놓고 절대 안 바꾼다. 아담의 일과 이브의 일을 미리 갈라놓는 것이 더 편하다.
사이좋게 알콩달콩 대화하고 협의해서 의사결정하는게 낫지 않을까? 천만의 말씀. 남자는 부엌에도 안 들어가고 서랍장도 안건드리는게 맞다. 내 양말은 내가 찾아 신는다? 그렇게 남의 영역을 침범하다가 칼부림 난다. 남자는 부엌출입 금지. 내 영역은 건들지 마. 옛날에는 제주도 사람이 제주도 일주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왜? 남의 동네는 원래 못 간다.
작고 고립된 부족은 서로 영역을 엄격하게 지키므로 옆집 개도 자기집에 못 들어오게 막아버린다. 제주도 내륙사람과 해안사람은 결혼도 안 한다. 쌀밥 먹는 한라산 마을과 물고기 잡아먹는 해안마을은 서로 차별한다. 인도의 불가촉천민도 불가시천민을 차별하는 판이다. 원래 백정차별은 상놈들이 열심히 한다. 가진것 쥐뿔도 없는 일베충들 보면 알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의 거리가 1만 킬로라면 제주도 동쪽과 서쪽에 사는 사람의 심리적 거리도 1만 킬로다. 육지 것들이 와서 약국 열면 절대 이용하지 않고 4킬로나 걸어서 옛날부터 가던 약국을 간다. 제주도사람이 아니고 육지 것들이니까. 요즘은 많이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몇 십년 전 신문칼럼에서 읽은 내용이 그렇더라. 왜? 의사결정은 대칭구조를 필요로 한다.
대칭이 없으면 억지로라도 대칭을 만들어낸다. 왜 대칭을 쓰는가? 대칭이라야 행동복제가 가능하다. 패턴을 알아챌 수 있다. 무조건 대칭을 만든다. 인간의 언어는 무수한 대칭으로 조직되어 있다. 한국인은 모르지만 영어 전치사는 모두 대칭짝이 있다. 동사들도 대부분 대칭쌍이 조직되어 있다. 대칭이 의사결정을 편리하게 한다. 그리고 교착시켜 망한다.
남북대결, 한일대결, 중미대결, 시아파 수니파 대결, 기독교와 무슬림의 대결, 육지것들과 제주도민의 대결, 이런 식의 대결구도를 만들면 행동복제가 수월해진다. 그러다가 망한다. 이러한 교착을 타개하는 방법은 탑 포지션을 차지하는 것이다. 정상은 원래 대칭이 없다. 우리가 정상에 오르지 않으면 돈돈돈 하고 갑질 일삼는 한국병은 절대로 낫지 않는다.
정상에 오르면 룰을 정하는 자가 되므로 달라진다.룰을 정하는 자는 본능적으로 교착을 타개하려고 한다. 왜? 일의 다음 단계가 있기 때문이다. 대칭 다음에 호응이 있다. 내가 부르면 상대방이 호응한다. 그런데 말이다. 정상에서만 부를 수 있다. 앞은 뒤를 호출할 수 있으나 꼬리는 머리를 부를 수 없다. 탑 포지션을 차지하면 호응을 기대하고 협력을 한다.
바텀 포지션을 차지하면 상대의 호응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무조건 차별한다. 일베충은 바텀 포지션이라서 차별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대칭하는차별게임보다 호응하는 협력게임이 더 재미가 있다. 단 협력게임은 구조복제가 가능한 탑포지션에서 시작해야 한다. 중앙이 하면 지방이 복제하는데 지방이 하면 그것을 복제할 하부지역이 더 없다는 말이다.
서울이 하는건 지방이 하는데 면단위 동단위로 가면 그 밑이 없다.아래로 갈수록 복제가 불가능하므로 차별게임을 한다. 타자를 배제하는 방법으로 균형을 맞출 뿐 협력하는 방법으로 균형 맞추기 불능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놔두면 반드시 차별하며 이것은 인간이 악한 동물이라서가 아니라 구조가 그런 것이며 탑에 올라서야 협력의 장점을 깨닫는다.
텍사스 촌넘들은 바텀 포지션이라서 어떻게든 차별을 포기하지 않는다. 무엇인가? 한국인들은 일등병에 걸려 있다. 한국이 일등해야 긍지를 가지고 긍지를 가져야 식민지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돈돈돈병을 이긴다. 갑질병, 차별병, 진상질병, 일베병, 돈돈돈병에는 중독성이 있으므로 외력의 개입없이 자력으로는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은 돈을 추구하지만 사실은 돈이 필요한게 아니다. 권력이 필요한 것이다. 탑 포지션이 필요하다. 룰을 정하는 자가 되고 싶다. 항상 돈이 있는 자가 내가 밥을 사겠어. 오늘은 짬뽕으로 통일! 하고 룰을 정한다. 그게 소박한 권력행사다. 돈을 휘둘러서 어깨에 힘을 주고 콤플렉스를 탈출하려고 하지만 무심코 그 행동을 반복하면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이 비참한 게임에서 탈출하려면 긍지를 가져야 하고 자존감을 얻어야 한다. 긍지를 주는 것은 사회주의 대안인데 그게 잘 안 되니까 돈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만 실패다. 한국이 일등이 되면 달라진다. 미개한 영국인들이 갑자기 신사를 자처하거나 혹은 야만한 프랑스인들이 갑자기 에티켓 타령을 하는 것은 얼떨결에 일등을 하다보니 긍지를 얻은 거다.
영국인과 프랑스인은 원래 나이프 포크도 없이 맨손으로 고기 뜯어먹던 야만인들이었다. 이 미개한 자들이 선진국 되는데는 긴 세월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목표가 주어지면 총알같이 달려가는게 인간이다. 한국도 5천년 만에 한 번 오는 기회를 잡았으니까 달려가야 한다. 좋은건 사회주의지만 사회주의는 그냥 되는게 아니고 먼저 세계와 동료먹어야 한다.
우리가 세계와 등 돌리고 고립주의를 하면서 내부적으로는 평등한 동료가 될까? 일본 미워하고, 북한 미워하고, 중국을 짱깨라 그러고, 미국을 혐오하면서 우리가 사회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을까? 천만의 말씀. 그거 절대로 안 된다. 안 되는건 안 되는 거다. 고립된 마을에서 지들끼리 평등하게 더치페이 하며 알콩달콩 잘 살거라는 낭만적인 초딩환상 버리라.
마오쩌뚱 일행이 장정을 나선 길에 충격을 받은게 서쪽 오지로 가면 갈수록 잔인한 풍속과 맞닥들이는 것이었다. 노예의 사지를 잘라서 돼지처럼 만들어 우리에 가둬놓는 식이다. 왜 이런 짓을 할까? 그게 인간이다. 인간은 격리되고 고립되면 잔인해지고 마침내 식인한다. 뒷산에 묘지를 쓰고자 하면 생돈 500만원 요구한다. 이건 약과다. 더 심한 짓도 한다.
한국의 수줍은 무뇌좌파들은 동굴에서 기어나와 천하를 발견해야 한다. 도시인이 되어야 한다. 호연지기를 얻어 세계시민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콤플렉스를 극복해야 한다. 일등을 해야 가능하다. 인간은 원래 중간에 못 있는다. 극중 좋아하네. 올라가면 계속 올라가고 내려가면 한없이 추락한다. 정상이 아니면 절망이 있을 뿐이다. 중간은 절대로 없다.
특히 변두리는 그렇다. 대륙에는 중간이 있다. 서울 올라가는 사람과 지방 내려가는 사람이 중간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변두리는 영국처럼 정상이 되든가 과거의 아일랜드처럼 최악이 되든가다. 당시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다. 그때 아일랜드는 영국에 착취당하다가 400만 명이 굶어죽었다. 이웃집이다. 대륙이라면 절대 이렇게까지 모질게 못한다.
영국이라서 흉악한 것이다. 왜? 섬이니까. 고립된 변두리니까. 막다른 곳에서는 비극이 일어난다. 한국은 변두리다. 북한도 변두리다. 최선이 아니면 최악이다. 한국은 최선으로 달려가고 북한은 최악으로 달려간다. 역사이래 늘 그래왔다. 올라갈 것인가 내려갈 것인가? 중간은 없다. 극중은 없다. 정상이 아니면 끝장이다. 우리가 긍지를 얻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은 무의식에 지배되는 단순한 동물이다. 도덕과 이성을 논하지만 구라고 지식인이라도 별수없이 어색함과 민망함과 창피함을 피해서 졸렬해진다. 우병우짓 하게 된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도 우병우짓 한다. 전관예우 한다. 기수별로 줄맞춰서 등산한다. 쪽팔리는 버러지 짓을 21세기에 한국의 검사들이 대낮에 한다. 한경오 기레기짓을 태연하게 한다.
당신도 한다. 인간되기 쉽지 않다.답은 게임 체인지다. 차별게임에서 협력게임으로 게임을 갈아타야 한다. 방법은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려면 고립된 오지에서 나와 광장으로 걸어들어가야 한다. 고향을 떠나야 한다. 서울에 온 촌놈이 되어야 한다. 역할과 지위와 평판과 신분의 감옥에서 탈출해야 한다. 천하인이 되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