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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무엇을 가르쳤는가?
공자는 무엇을 가르쳤는가? 공자는 인의를 가르쳤고, 노자는 도덕을 가르친 걸로 되어 있다. 석가의 자비, 예수의 사랑, 소크라테스의 지혜도 알려져 있다. 인의라느니, 도덕이라느니, 자비라느니, 사랑이라느니, 지혜라느니 이딴 말은 사실 초딩도 할 수 있는 말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에 지혜가 없었고, 예수 이전에 사랑이 없었겠는가? 천만에! 노자 이전에도 도덕은 있었고, 공자 이전에도 인의는 있었다. 있을 것은 구석기 시절부터 다 있었다. 성인은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점이 각별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웃기셔들! 실천은 개뿔, 예수는 사랑도 해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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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15, 향당과는 말하지 않는다
제 9편 자한子罕 이利와 명命과 인仁을 말하는 일이 드물었다. 공자는 자연스러운 일의 흐름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었기 때문에 별도로 형이상학을 만들어낼 이유가 없었다. 깨달음 없이 형이상학을 만들면 반드시 거짓 귀신을 지어내거나 저급한 명가의 궤변으로 빠지게 된다. 형이상학의 부재는 이후 유교가 쇠퇴하고 도교와 불교가 그 빈자리를 메우는 원인이 된다. 그러자 중국은 쇠퇴했다. ### 공자는 네가지를 끊었으니 의도意와 무리수必와 고집固과 아상我이다. 의意는 A를 얻기 위해 일단 B를 내세우는 식의 꼼수행동이다. 밑바닥에 저의를 감춘 것이다. 필必은 반드시 이거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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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8, 무위는 필망이라
52, 천하에 시작이 있으니 천하의 어미다. 이미 어미를 얻었으니 그 자식을 알고, 이미 자식을 알기에, 다시 그 어미를 지킬 수 있어, 죽을때까지 위태롭지 않다. 자랑을 막고, 문을 닫으면, 죽을때까지 근심이 없다. 자랑을 열고 일을 벌이면 죽을때까지 구하지 못한다. 작은 것에 밝음이 있고, 부드러움을 지키면 강함이 있다. 그 빛을 쓰고, 밝음으로 돌아가면, 몸에 재앙이 없으니, 이는 항상됨을 배우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좋게 시작해놓고 뒤에 망가지는 패턴이다. 천하에 시작이 있다함은 구조론적이다. 어미에서 자식으로 연역된다. 이것은 좋다.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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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똑바로 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언어의 딜레마 말을 똑바로 하면 깨달음은 이미 그 안에 있다. 언어의 가장 큰 딜레마는 ‘누가 물어 봤냐?’다. 모르는 사람에게 함부로 말을 건다면 황당하게 된다. ‘도를 아십니까?’ 어색한 장면이다. 군자라면 피해야 한다. 언어가 당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당한 언어는 어떤 것인가? 우리는 아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 틀렸다. 숨은 전제가 작동한다. 이미 왜곡되어 있다. 모든 속임수는 숨은 전제를 이용한다. 당신이 모르는 사람에게 ‘배가 아프다.’고 말하면 그 사람은 ‘누가 물어봤냐?’고 핀잔을 줄 것이다. 당신은 매우 창피하게 된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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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14, 창세기의 관점
제 8편 태백泰伯 “태백은 덕이 지극하다. 세 번 천하를 사양했는데도 은거하였기에 사람들은 그의 덕을 모르고 칭찬하지 않는다.” 태백은 주나라의 성립기에 왕위를 동생에게 양보하고 은거한 사람이다. 공자는 주나라를 칭송하면서도 무왕이 은나라를 치는데 반대한 백이, 숙제를 떠받든다. 태백 역시 아버지 고공단보가 장차 정복사업을 일으킬 야심을 보이자 이에 반대하여 떠난 인물이다. 공자의 이런 점은 언뜻 모순으로 보인다. 공자는 하은주로 이어지는 왕조의 계승을 봄여름가을겨울과 같은 자연법칙으로 보았기에 인위적인 개입을 지지하지 않았다. 망할 나라가 망하고 흥할 나라가 흥하는 것은 천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