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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죽일 기생충 서민
쳐죽일 기생충 서민 http://seomin.khan.kr/360 - 아마 서민의 홈? 전형적인 향원놀음이다. 공자와 맹자가 이를 갈며 경계했다는 그 향원 말이다. 잼있는건 공자와 맹자 이후로는 향원을 씹은 유학자가 없다는 거. 왜냐하면 지들이 꼰대질하는 향원이 되어버렸으니까. 주자 이후 타락해서 죄다 향원이 되어버린게 유교의 퇴행이다. 유교의 근본은 임금을 키우는 건데 위로 올라가기보다 아래를 짓밟는게 더 쉽게 목표에 도달한다. 어차피 목적은 권력이니까. 문빠 밟아주기 쉽잖아. 바깥으로 나가서 길을 열지는 않고 집구석에 틀어박혀 만만한 식구들을 붙잡아 앉혀놓고 군기잡는다. 시골에서 주름잡는 게 향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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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가 있어야 산다
의리가 있어야 산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서구는 중국을 배우기 바빴다. 19세기부터 태도를 바꾸기 시작한다. 19세기는 인종주의 시대다. 선교사니 뭐니 해서 중국과 한국을 돌아다니며 이 저주받은 나라는 없어져야 한다는 식의 글을 써댔고 그런 글이 팔렸다. 그렇게 끌어모은 에너지로 그들은 전쟁을 벌였다. 한국인들은 모든 재난을 유교 탓으로 돌렸다. 불행은 뒤늦게 배운 인종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이다. 민족사관이라는 타이틀을 달지만 그게 인종주의다. 식민사관의 변종이다. 한국인은 열등하다는 전제를 깔고 그렇지만 이게 다 유교 때문이고 사실 5천년 전에는 중국땅이 우리땅이었다고. 지금은 한중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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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냐 촌놈이냐
초인과 촌놈 초인으로 번역되는 니체의 위버맨쉬가 영어로는 슈퍼맨 혹은 오버맨이라는데. 우습다. 뛰어넘으란다. 무엇을 뛰어넘는다는 말인가? 의사결정이다. 과연 의사결정할 수 있는가? 인간은 사건 속의 존재다. 사건은 서둘러 진행된다. 관성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다. 그 관성을 탈출할 수 있는가? 달리는 버스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가? 지구 안에서 중력을 탈출할 수 있는가? 초인은 사회에서 먹어준다는 도덕률이나 혹은 인간관계 속에서 꼬일대로 꼬여 지리멸렬해진 각자의 입장을 뛰어넘어 과감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겠다. 인간을 억압하는 것은 평판과 명성과 지위와 체면과 신분과 서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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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무엇이 다른가?
세종은 무엇이 다른가? http://v.media.daum.net/v/20171009000047310?rcmd=rn -안봐도 됨다. 상식을 의심하라. 상식이 다 맞다면 세상이 이토록 개판일 리가 없다. 상식은 상식으로 포장하여 판매하는 중간자에 의해 왜곡된다. 빌어먹을 계몽주의다. 그들은 사실 속에 자기 말을 끼워넣는 수법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중앙일보 역시 기레기답게 거짓을 날조한다. 세종이 신하들과의 질문과 토론을 통해 공부했단다. 즉 세종은 신하에게 배웠다는 말이다. 문재인은 내게 와서 배워라는 말이다. 이런 거짓말에 넘어가지 말자. 당연히 맞는듯이 보이는 말은 당연히 검증이 안 된 거짓말이다. 한때는 공부를 안 시키고 자유방임하면 저절로 공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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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이 세상을 바꾼다
구조론의 답은 끝까지 가는 에너지를 얻어 장기전을 하면서 합리적 의사결정을 계속하여 가는 것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려면 사건을 일으키는 자의 관점을 얻어야 한다. 곧 주체성이다. 주체성을 얻으려면 대표성을 가져야 한다. 대표성을 이루려면 타자성을 깨달아야 한다. 타자성의 깨달음이 말하자면 촌놈정신이다. 촌놈이 아니면 도시인이다. 도시인은 자신의 기득권과 역할과 포지션과 지위에 갇혀 있다. 그래서 행동이 무겁다.필자가 노상 비판하여 말하는 향원이다. 독점적인 자기 나와바리를 가지고 안방에서 주름잡는 향원이 되지마라. 공자가 마주치면 말도 안 한다는 그 재수없는 향원 말이다. 향원은 시골유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