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을 잡는 방법
탑 포지션을 잡는다는 것을 두고 ‘무작정 회사나 조직의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되는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피상적인 접근이고 본질을 봐야 한다. 에너지가 들어오는 입구 쪽에 선다는 거다.
계에 밀도를 걸어 센터를 형성하고 대칭의 축을 장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부구조를 지배해야 한다. 계는 닫아걸어서 닫힌 계를 형성해야 한다. 그 상태에서 다시 외부의 에너지를 끌어와서 내부에서 순환시키고 배출하는 거다.
탑은 일상생활에도 있고, 하루 안에도 있고, 밥먹을 때도 있고, 화장실에서 떵 쌀 때도 있고 어디가나 있다. 미야모도 무사시는 그의 오륜서에서 이를 두고 ‘선수를 잡는다’고 표현하였다.
문 - ‘싸움에서 이기는 비결은?’
답 - ‘선수를 잡으세요.’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구조론도 마찬가지다.
문 - ‘경제를 살리는 방법은?’
답 - ‘돈을 찍어내면 됩니다.’
참 간단하다. 그런데 맞는 말이다. 세상 이치는 원래 간단한 거다. 복잡하게 말하는 사람은 아직 뭔가를 모르고 있다. 최고의 연주자에게 물어본다.
문 - ‘피아노를 잘 치는 방법은?’
답 – ‘밸런스가 답입니다.’
최고의 투수에게 물어보자.
문 - ‘공을 잘 던지는 방법은?’
답 - ‘힘 빼고 던지세요.’
그런데 이게 정답이다. 문제는 무작정 선제공격을 한다고 해서 그게 미야모도 무사시가 말하는 선수잡기는 아니라는 거다. 상대가 미리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다면 이미 후수를 잡힌 거다.
무작정 종이를 찍어낸다고 그게 돈을 찍어내는건 아니다. 그 돈이 생산을 자극하도록 필요한 포지션들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경제라는 생물이 뻗어나갈 배후지가 갖추어져 있어야 하고 방향성이 제시되어야 한다.
밸런스를 이루려면 근육부터 만들어야 한다. 근육과 호흡의 밸런스가 맞으면 근육이 악보를 기억하므로 한 번 쳐보고 바로 전 곡을 칠 수 있다. 악보를 머리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호흡의 리듬을 타면 저절로 기억된다.
힘 빼고 던지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웨이트를 해서 상하체 밸런스를 맞추어야 한다. 이 모든 문제의 정답은 계에 밀도를 걸어주는 거다. 닫힌 계를 형성하는 거다. 센터를 성립시키고 축이 대칭을 장악하게 하는 거다.
구조는 입구와 출구를 틀어막고 내부에 스트레스를 걸어주면 저절로 질서가 생겨서 답이 나와준다. 이때 딱 한 가지 지표로 전체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어떤 것을 분석하기 위하여 이것저것 여러 가지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면 이미 틀려버린 거다. 이는 계에 밀도가 걸리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해야 딱 한 방으로 알 수 있다.
스트레스가 약할 때는 계가 형성되지 않아 돌발변수가 나타날 때 결과를 알 수 없다. 눈덩이가 어느 쪽으로 구를지 모른다. 그러나 일정한 임계에 도달하면 정해진 방향으로만 진행한다.
스트레스라는 표현이 심리적으로 불쾌한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압을 걸어주는 것이다. 전기면 전압이 있고, 바람이면 기압이 있고, 물이면 수압이 있다. 구성원 상호간의 거리를 밀접하게 좁히는 거다.
밥솥에 스트레스가 걸리면 뚜껑이 열리고 증기가 빠진다. 그때 ‘삐이’ 하고 소리가 난다. 딱 한 방으로 밥이 지어졌는지 알 수 있다. 이것 저것 살피고 정보를 취합하면 이미 틀려버린 것이다.
밀도가 걸렸다면 딱 한방으로 돌아가는 판도 전체가 파악되어야 하며 그때 문제의 답은 매우 간단한 거다. 물론 밀도가 걸리지 않았다면 실패다. 탑을 잡을 수 없다. 근육도 없는데 힘 빼고 던지라면 되겠는가 말이다.
정답은 ‘선수’다. 무조건 선수를 잡는 쪽이 이긴다. 그런데 미야모도 무사시에 의하면 ‘기다리는 선수’도 있다. 미리 함정을 파놓고 상대의 선제공격을 유도하는 거다. 상대가 들어오는 동작을 이미 읽고 있으므로, 상대가 먼저 공격해도 내가 선수다. 내가 먼저 선제공격을 해도 첫번째 동작은 속임수다. 두 번째 동작이 진짜공격이므로 상대는 결국 후수를 잡히고 만다.
선수를 잡으려면 밀도를 걸어야 한다. 돌아가는 판 전체를 읽고 상대와 나의 동작 전체를 읽고 그 사이에 절묘한 밸런스를 성립시킨 후 조금씩 접근하여 서서히 압박하면 상대는 허둥지둥 하다가 뒤로 자빠져서 주저앉게 된다. 먼저 공간을 좁히고 막판에는 시간공격이다. 호흡을 빼앗는다.
그러나 보통은 어떤가? 앞으로 뒤로 일진일퇴 하면서 상대에게 공간과 시간을 내준다. 한 번 치고 한 번 빠지는데 이때 상대는 호흡을 고르며 다시 재충전을 한다.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다. 미야모도 무사시는 그런거 없다. 칼박치기 하면서 일진일퇴 하는거 없이, 계속 조금씩 접근해서 상대의 호흡을 뺏으므로 상대는 힘 한번 못 쓴다.
멈추지 않고 계속 다가서는데 완벽하게 거리를 재고 있으므로 상대는 막을 수 없다. 보통은 긴 칼을 휘둘러 위협함으로써 상대를 밀어내려고 하지만 미야모도 무사시는 두 개의 칼을 쓰므로 하나로 막고 어느 새 거리 안으로 들어와있다.
맹수들이 싸울 때는 서로 으르릉대면서도 한편으로 딴전을 피운다. 곁눈질 하면서 정면으로 상대를 안 보고 관심없다는듯이 일부러 다른 데를 보는 척 한다. 그 경우 상대방도 슬쩍 고개를 돌리게 되는데 바로 그때가 공격타이밍이다. 찰나의 순간에 호흡을 뺏기면 바로 가는 거다. 숲속에서 곰을 마주쳤을 때는 곰이 고개를 돌리더라도 계속 부동자세로 곰을 째려봐야 한다.
계를 형성하고 긴장을 조성하여 밀도를 걸어주면 그게 탑이다. 탑은 방구를 낄 때도 있고 응가를 할 때도 있다. 힘을 주는게 탑이다.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줘서 상대의 반응을 끌어내는 거다.
어떤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가? 문화, 예술, 패션이라는 것이 실은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다. 계속 긴장한 채 깨어있고 하고 이쪽을 주시하게 한다. 언론은 지속적으로 어젠다를 생산하고 이슈파이팅을 한다.
정치인은 계속 건수를 터뜨려서 자신을 주목하게 한다. 밥통들도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주는데 전봇대를 뽑거나 119를 뽑거나 해서 국민을 괴롭힌다. 침묵모드로 스트레스를 주는 방법도 있다.
안철수도 뭔가 좀 아는 양반인데 과묵한 척 하면서 교묘하게 언론의 시선을 잡아두고 있다. 한 템포 빠르거나 느리게 조절할줄 안다. 사람들이 예상한 시점에서 튀어나오면 스트레스 못 준다. 약간 빠르게 치고나가거나 약간 느리게 대응하는게 기술이다.
탑은 목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무조건 명동에 땅을 사둔다고 다 되는건 아니다. 도로가 끝나는 지점이 목 좋은 자리다. 가부간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지점이 포인트다. 낚시터라면 새 물이 들어오는 지점이 포인트다. 그곳에 트래픽이 높다. 어떻든 남이 자신을 흉내내게 하는 방법이 가장 좋다.
내가 한 걸음 움직이면 상대도 한 걸음 움직인다. 두어번 반복하면 일정한 패턴이 생긴다. 그때쯤 해서 갑자기 확 방향을 틀어버리면 상대는 그대로 자빠진다. 이건 기술이다. 룰을 만들면서 동시에 룰을 깨는 자가 승리한다.
상류사회의 관습도 그렇다. 이게 매너고 저게 에티켓이고 하면서 잡다한 규칙을 잔뜩 정한다. 그 규칙을 따라오게 만든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배제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룰을 다 깨버린다. 남은 규칙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안 지킨다. 대가들은 대부분 이런 방법을 쓴다.
이런 규칙 정하기와 규칙 깨기는 작품 안에도 있다. 소설 안에도, 드라마 안에도 끝없는 밸런스를 추구하며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 가다가 그게 어떤 한계에 도달하여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바깥테두리가 발견될 때 확 틀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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